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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한 켤레가 지역의 이름이 되기까지: 셀부에서 마리우스 스웨터로

시대 17세기 편물 기록부터 20세기 지역 산업과 현대 도안까지
인물 마리트 굴세트/엠스타드, 말리 엠스타드, 안니헨 시베른 뵌, 운 쇠일란 달레
주요 유물 셀부 장갑·세테스달 재킷·마리우스 스웨터

2018년 트론헤임 장터에 놓인 셀부 장갑
사진 1. 2018년 트론헤임 장터에 놓인 셀부 장갑 · © Kjersti Lie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검은 실과 흰 실로 뜬 장갑을 보면 여덟 잎 장미부터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작은 손바닥에는 한 소녀의 실험, 여러 집의 생계, 도안을 표준화한 생산 조직, 오늘의 박물관이 기록한 기억이 겹쳐 있다. 노르웨이 뜨개를 ‘오래된 눈꽃무늬’ 하나로 묶으면 이 층들이 사라진다. 셀부의 자료에서 출발해 국가박물관의 유물과 20세기 디자이너의 이름까지 따라가 보자. [1][2][3]

사진 속 2008~2018년 장갑과 스웨터는 19세기 마리트의 원작이 아니다. 옛 물건의 정보는 셀부 향토박물관의 소장 목록에서 확인하고, 현대 사진에서는 무늬 배치와 옷의 구성을 관찰한다. 저자·제작 시기·사용 허가를 따로 확인한 사진만 실었다. [2][8][9][10][11][12]

역사와 배경

노르웨이 민속박물관은 자국의 편물사를 17세기 초 도입 이후의 변화로 설명한다. 박물관의 18세기 소장 편물에서는 장갑과 양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여러 색의 재킷이 세테스달과 파나 등에서 뚜렷해지는 시기는 19세기 중반이다. 오늘의 관광 상품에서 보이는 스웨터를 수백 년 전 노르웨이 사람 모두가 입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전시는 살아남은 물건의 종류와 지역을 알려 주지만, 당시 모든 가정의 옷장을 통계로 보여 주지는 않는다. [1]

셀부 지역의 전승은 더 구체적인 사람의 손으로 내려온다. 셀부 향토박물관의 전시 자료에 따르면 1841년 태어난 마리트 굴세트는 1856~1857년 무렵 셀부에서 두 색 실을 쓰는 편물을 시도했다. 자료는 겨울에 다른 젊은 여성이 집주인을 위해 두 색 스타킹을 떴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이듬해 열여섯 살 마리트가 장갑 전체에 두 실을 통과시키고 장미무늬를 넣은 첫 장갑을 만들었다는 전승이다. 마리트와 자매들이 그 장갑을 끼고 교회에 갔을 때 동네의 주목을 받았고, 1870년대에는 이 방식이 셀부에 정착했다. 전승의 장면과 문서로 확인되는 생산의 연표를 같은 종류의 증거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2]

박물관은 곧바로 중요한 단서를 덧붙인다. 두 색 실 편물은 셀부 이전에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다른 곳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마리트가 ‘두 색 뜨기’를 발명했다는 말은 따라서 틀리다. 그 이름에 귀속된 것은 셀부에서 장미를 배열한 두 색 장갑이 빠르게 퍼져 지역 양식으로 자리 잡은 이야기다. 첫 장갑의 재료는 표백하지 않은 흰 양모와 갈색·검정·회색의 손방적사였으며, 뒤에 적갈색 유행도 있었다고 전시 자료는 설명한다. 색을 줄여서 얻은 선명한 대비가 셀부 장갑의 시각적 기억을 만들었다. [2]

지역의 명성은 손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셀부 향토박물관은 1934년 7월 셀부 후슬리드센트랄이 지역 상점과 제작자의 연합으로 세워졌고, 1935년 실제 운영을 시작했다고 기록한다. 조직은 좋은 도안을 등사해 나눠 주고 모양·치수·무게 기준을 정했으며, 지정한 실을 공급했다. 남아 있는 남성 장갑 지침은 손목에서 엄지까지의 거리가 너무 짧다는 제작상 오류까지 지적한다. 한 집의 솜씨가 전국에서 알아보는 물건이 되려면 디자인의 반복 가능성, 검수, 유통망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1937년 매출액도 자료에 남지만, 그 숫자를 오늘의 화폐 가치나 여성 개인의 소득으로 곧장 바꾸어 말할 수는 없다. [2][3]

셀부 향토박물관의 2004년 전시 목록은 약 350점의 편물과 여러 편물 기계·사진을 모았다고 밝힌다. 목록에는 몹시 닳고 손바닥을 여러 번 수선한 장갑이 기록되어 있다. 화려한 장미 문양을 전시장의 장식으로만 읽으면 그 물건이 추위를 막고 오래 사용된 생활 도구였다는 사실을 놓친다. 바로 이 사용 흔적 때문에 원본 물건과 오늘의 매끈한 상품 사진을 구별해야 한다. [2]

2009년에 촬영한 흑백 셀부 장갑
사진 2. 2009년에 촬영한 흑백 셀부 장갑 · © Lin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인물과 노동

마리트의 이름은 지역 양식을 시작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다만 젊을 때의 성은 굴세트였고, 엠스타드라는 이름은 생애 후반 딸 말리의 집에서 살면서 얻게 되었다고 지역 자료는 설명한다. 이를 빼고 ‘마리트 엠스타드가 1856년에 발명했다’고만 쓰면 당시 이름과 전승의 형성 과정이 지워진다. 그의 딸 말리 엠스타드는 뛰어난 직조가로 기록된다. 지역 박물관은 말리가 여덟 잎 장미를 직물 장식에 사용했다는 전승과 자카드 장비를 함께 소개한다. 어머니의 편물과 딸의 직조를 같은 기술로 섞지 않으면서, 모티브가 서로 다른 섬유 작업 사이를 이동하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다. [2][3]

셀부 밖의 20세기로 시선을 옮기면 도안의 저자를 적는 방식 자체가 주제가 된다. 안니헨 시베른 뵌은 지역별 편물 무늬를 수집하고 책으로 정리한 인물이다. 원본 유물을 뜬 여성과 기록·재구성한 사람의 역할은 다르다. 민속무늬라는 말만으로 책의 편집자와 설계자의 공을 없앨 수 없다. 한편 운 쇠일란 달레는 1950년대 마리우스 스웨터를 디자인하고 손뜨개 생산을 조직했다. 그의 사업이 많은 제작자에게 일을 주었지만, 도안이 유명해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다는 전기도 남아 있다. 노르웨이 스웨터를 익명의 전통으로만 설명하면 바로 이 디자이너와 편물가들이 보이지 않는다. [4][5]

국가박물관 전시에는 세테스달·파나의 재킷과 20세기의 마리우스, 페르 스푸크, 스카펠 스웨터가 한 공간에 놓인다. 이것은 하나의 무늬가 고대부터 조금씩 변해 왔다는 도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기에 다른 독자와 시장을 만난 편물의 연속이다. 지역 장갑의 생산자, 출판 도안을 정리한 사람, 전국적인 스웨터를 설계한 사람을 각각의 이름으로 불러야 노르웨이 뜨개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1][4][5]

2008년 현대 의복에 쓰인 팔각 장미 무늬 확대
사진 3. 2008년 현대 의복에 쓰인 팔각 장미 무늬 확대 · Nils R. Barth /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작품과 남아 있는 자료

셀부 장갑을 실제로 읽을 때는 먼저 겉면과 손바닥을 나누어 보자. 향토박물관 전시 목록에는 마리트가 떴다고 기록된 남성 장갑 한 켤레가 있다. 목록 번호 SE 3093의 겉면은 ‘양 뿔 장미’의 변형, 안쪽은 다른 무늬, 손목은 다시 별도 띠무늬로 설명된다. 우리가 흔히 셀부 장갑을 하나의 여덟 잎 장미로만 기억하는 것과 실제 물건의 무늬 구성은 다르다. 표제에서 제작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바로 다음 줄에서 부위별 무늬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목록은 전승보다 단단한 작품 자료다. 다만 목록에 없는 정확한 코 수를 추정해 적지는 않는다. [2]

차트의 칸은 코의 위치를 보여 줄 뿐 완성 치수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손목에서 엄지까지가 짧아 불량이 된다는 1930년대 생산 지침은, 아름다운 무늬와 맞는 장갑이 별개의 과제임을 증명하는 드문 자료다. 현대 도안으로 다시 뜰 때는 원본의 실 두께와 내 손의 게이지를 비교하고, 엄지 분기 전 실제 길이를 재야 한다. 두 색 뜨기에서 쓰지 않는 실은 안쪽으로 건너간다. 실걸침을 지나치게 조이면 겉의 장미가 오그라들고, 너무 느슨하면 손가락이 걸릴 수 있다. 이는 구조를 읽는 제작상의 관찰이지 마리트의 손동작을 그대로 복원했다는 주장은 아니다. [2]

세테스달 재킷과 마리우스 스웨터를 함께 보면 또 다른 읽기법이 생긴다. 박물관의 19세기 지역 재킷과 달리 마리우스는 20세기의 이름 있는 디자이너가 기존 지역 무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특정 도안이다. 전통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저자의 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옷을 뜨는 독자라면 가슴둘레의 완성 치수, 어깨 구조, 배색 구간의 실걸침과 세탁 뒤 밀도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관광 기념품의 인상보다 실제로 입을 수 있는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 도안을 깊게 읽는 첫 단계다. [1][5]

사진의 물건은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한다. 트론헤임 장터의 장갑과 2009년 현대 셀부 장갑은 같은 지역 양식이 오늘에도 만들어짐을 보여 주지만 1850년대 마리트의 원본은 아니다. 팔각 장미 확대 사진은 한 모티브의 표면을 읽기 위한 자료이고, 2008년 루세코프테 사진은 장갑과 다른 옷의 배색 구성을 비교하기 위한 자료다. 어부 장갑은 노르웨이 민속박물관 소장품으로, 셀부 장갑과 동일한 지역 물건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사진에 보이는 무늬와 박물관 목록 SE 3093의 무늬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2][8][9][10][11][12]

마리우스의 경우에는 디자인의 이름과 대중적 유행이 저작권 문제를 지우지 않는다. 아래에는 마리우스 스웨터 원도안이나 보호되는 상품 사진을 복제하지 않았다. 대신 셀부의 장갑, 다른 종류의 작업 장갑, 현대 루세코프테를 나란히 놓아 지역 양식과 20세기 디자이너 작품을 구분한다. 뵌의 1929년 책 표지 역시 재사용 허가가 제한된 사진이라 이 글에 싣지 않고 서지와 설명만 인용한다. [4][5]

노르웨이 민속박물관의 전통 어부 장갑
사진 4. 노르웨이 민속박물관의 전통 어부 장갑 · © Anne-Lise Reinsfelt / Norsk Folkemuseum · CC BY-SA 4.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시간으로 다시 읽기

  1. 17세기 초 · 노르웨이에 편물이 도입된 이후의 변화를 노르웨이 민속박물관 전시가 다룬다. [1]
  2. 1856~1857 · 셀부 전승에서 마리트 굴세트의 두 색 장갑 실험이 이 시기에 놓인다. [2]
  3. 1870년대 · 셀부에서 두 색 장미 장갑이 지역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2]
  4. 1934~1935 · 셀부 후슬리드센트랄이 설립되고 운영을 시작해 도안·치수·검수를 조직했다. [2]
  5. 1953~1954 · 운 쇠일란 달레가 마리우스를 설계하고 1954년 도안이 출판되며 전국적 유행을 이끌었다. [5]
2008년에 촬영한 현대 루세코프테
사진 5. 2008년에 촬영한 현대 루세코프테 · Nils R. Barth /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다시 읽으며

셀부 장갑 한 켤레는 ‘옛날부터 내려온 눈꽃무늬’보다 훨씬 풍부한 이야기다. 전승 속의 마리트, 도안을 찍어 나눈 생산 조직, 원본을 보존한 박물관, 자신의 이름을 지키려 한 현대 디자이너가 각기 다른 자리에서 실을 이어 왔다. 다음에 노르웨이 도안을 열면 무늬의 이름과 함께 제작 연도, 출처 지역, 도안 저자, 실제 치수와 게이지를 읽어 보자. 그 작은 정보들이 장갑을 전설이 아닌 사람의 작업으로 돌려놓는다.

사진을 읽을 때 사진 1은 2018년 트론헤임 장터의 현대 셀부 장갑, 사진 2는 2009년 현대 셀부 장갑, 사진 3은 2008년 팔각 장미 확대, 사진 4는 민속박물관 소장 어부 장갑, 사진 5는 2008년 현대 루세코프테다. 마리트가 직접 뜬 장갑이나 뵌의 책·달레의 원도안을 찍은 사진은 포함하지 않았다.

자료와 사진 출처

본문의 번호는 다음 원문 자료를 가리킵니다. 사진의 저작권·이용 조건은 각 사진 아래 원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자료 1 · norskfolkemuseum.no
  2. 자료 2 · www.selbu.kommune.no
  3. 자료 3 · www.selbu.kommune.no
  4. 자료 4 · snl.no
  5. 자료 5 · snl.no
  6. 자료 6 · www.selbu.kommune.no
  7. 자료 7 · husflid.no
  8. 자료 8 · commons.wikimedia.org
  9. 자료 9 · commons.wikimedia.org
  10. 자료 10 · commons.wikimedia.org
  11. 자료 11 · commons.wikimedia.org
  12. 자료 12 · commons.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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