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누가 남겼을까: 1809년 영국 실크 편물 핀쿠션의 두 면
자료 조사·작성: 뜨자뜨개 / DDUJA KNIT
핀은 작고 잘 잃어버린다. 그래서 바느질 곁에 두는 핀쿠션은 먼저 손이 닿는 도구다. 그런데 영국에서 1809년에 만들어진 가로·세로 평균 9cm의 실크 편물 핀쿠션에는 꽃 장식만이 아니라 MARY WILLIAMSON 1809라는 글자가 코로 들어가 있다.[1] 핀을 꽂는 물건에 이름과 연도를 남긴 까닭은 무엇일까?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이 소장품을 정면, 반대편, 옆면으로 돌려 보고,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다른 핀쿠션 기록과 대조하면, 작은 편물의 표면이 어떻게 무늬와 기억을 함께 담는지 읽을 수 있다. 다만 이 이름이 제작자, 소유자, 선물 받은 사람 중 누구인지는 기록이 밝히지 않는다.
한 물건의 두 면: 꽃과 이름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소장번호 1943.121은 제목을 Pin Cushion Sampler로, 제작지를 영국으로, 제작 연도를 1809년으로, 재료와 기법을 ‘실크, 편물’로 적는다.[1] 사진 속 정면에는 밝은 바탕과 어두운 색으로 짠 꽃 모티프가 보인다. 화면만으로 색 이름을 정확한 염료나 원사 종류로 환원하지는 않는다. 이 사진이 말해 주는 것은 작은 면을 꽃줄기와 테두리로 분할했다는 시각적 사실이다.

반대편 사진에는 글자가 중심에 들어간다. 박물관의 명문 전사는 ‘MARY WILLIAMSON 1809’이며, 설명은 이 이름과 연도가 핀쿠션에 편물로 짜 넣어졌다고 분명히 한다.[1] 글자를 뒤에 펜으로 적거나 별도 천에 수놓았다고 바꾸어 설명할 수 없다. 무늬를 만드는 코의 배열에 문자도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쓰인 이름이 누구의 이름인지는 다른 문제다. 기록은 제작자의 실명이나 전달 경로를 제시하지 않는다. ‘메리 윌리엄슨의 작품’이라고 부르면 명문의 존재에서 저자까지 뛰어넘는 셈이 된다.

옆면에서 보이는 것과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한 장의 정면 사진만 보면 이 물건을 납작한 장식판으로 오해하기 쉽다. 옆면의 다른 촬영 각도에서는 두꺼운 몸체와 둘레를 가로지르는 띠가 보인다. 이 띠는 사진으로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기록은 두 편물을 어떤 순서로 짰고 어느 바늘로 잇거나 무엇을 채웠는지 기술하지 않는다.[1] 따라서 그 띠가 모든 이음을 가리는 제작 단계였다고 단정하거나 속 재료를 특정하지 않는다. 사진은 결과의 구조를 보여 주고, 작업 순서를 재현하는 도안은 아니다.

이 구별은 비교 소장품을 읽을 때 중요해진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18세기 영국 핀쿠션 545-1864는 실크로 두 조각을 메리야스뜨기하고 가장자리에서 이어 붙였다고 기록한다.[2] ‘C. Osboldeston’이라는 이름이 꽃 사이에 들어가며, 땋은 끈 고리로 허리에 달 수 있었다는 설명도 있다. 기록의 게이지는 1인치당 28코다. 이 수치와 제작법은 그 V&A 물건의 정보다. 1809년 클리블랜드 물건의 게이지나 착용법으로 옮겨 쓸 근거는 없다. 다만 두 기록을 함께 보면 이름이 편물의 장식과 나란히 놓일 수 있고, 작은 핀쿠션에서 가장자리 마감이 중요한 관찰점이라는 사실을 비교할 수 있다.

1733년의 표식과 작은 편물의 쓰임
V&A의 또 다른 영국 핀쿠션 T.251-1960에는 ‘EW’와 ‘1733’이 서로 다른 면에 나타난다.[3] 크림색 실크와 은도금 실을 가는 강철 바늘로 짰으며 꽃·새·기하학 무늬가 들어간다. 그 기록은 두 편물을 잇고 솔기를 땋은 끈으로 덮었다고 명시한다. 이 경우에는 이음의 마감에 대한 문장이 남아 있다. 클리블랜드 유물의 띠 사진과 닮았다고 해서 두 물건이 똑같은 순서나 재료로 조립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두 기록 사이에는 76년의 간격도 있다.
V&A의 T.66-1970은 또 다른 대조점이다.[4] 1730–1769년으로 넓게 연대가 매겨진 갈색·크림색 실크 원통형 핀쿠션으로, 기록은 메리야스뜨기, 가운데 묶은 땋은 실, 양쪽의 서로 다른 무늬와 ‘M M’이라는 이니셜, 1인치당 26코를 적는다. 세 V&A 물건에서도 모양·표식·게이지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 작은 표본을 영국 핀쿠션 전체의 규격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V&A의 또 다른 핀쿠션 T.128-1992는 ‘실크 편물 핀쿠션’이라고 간결하게 적고, 제작 시기를 약 1770–1820년이라는 넓은 범위로 제시한다.[5] 그 기록에서 이름, 게이지, 조립 순서를 끌어낼 수는 없다. 목록이 침묵하는 대목은 비어 있는 채로 둬야 한다.

V&A의 수편물 역사 해설은 기계 편물의 발전 뒤 18세기 영국에서 장식적인 손뜨개가 여가와 교육의 활동으로도 이어졌고 핀쿠션 같은 물건이 솜씨를 드러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6] 이것은 시대 배경이지, 1809년 이 핀쿠션이 어느 학교 과제였거나 누구에게 선물되었다는 증명은 아니다. 우리가 확실히 보는 것은 손에 드는 도구의 한 면에 꽃이, 다른 면에 이름과 날짜가 편물로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사진에 나타나는 둘레의 띠는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 시선을 옮기게 한다. 기능과 기억이 만나는 지점은 거창한 기념비가 아니라 작은 실크 표면일 수 있다.
다음 도안을 펼칠 때: 사진과 설명을 분리해 읽기
편물 소품 도안을 볼 때 이 물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완성 도안이 아니라 질문의 순서다. 첫째, 앞뒤에 같은 무늬를 놓는가, 다른 정보를 나누어 놓는가. 둘째, 편물의 가장자리가 어디에서 만나며 띠나 끈이 표면을 어떻게 가로지르는가. 셋째, 문자나 숫자가 코로 짜였는가, 나중에 자수·라벨로 더해졌는가. 마지막으로 사진에서 직접 확인한 부분과 박물관 기록이 설명한 부분을 나누어 적자. ‘MARY WILLIAMSON 1809’는 편물로 남은 문자이지만 메리의 신원과 손놀림 전체는 이 소장품 카드 밖에 있다. 작은 핀쿠션을 제대로 읽는 방법은 그 빈칸을 상상으로 채우지 않고, 남아 있는 코와 기록이 각각 말하는 만큼만 듣는 것이다.
원자료
- The Cleveland Museum of Art, Pin Cushion Sampler, 1943.121, 1809; 작품·명문·치수·CC0 사진 기록.
- V&A, 545-1864, 18세기 영국 실크 손편물 핀쿠션.
- V&A, T.251-1960, 1733년 영국 실크·은도금 실 핀쿠션.
- V&A, T.66-1970, 1730–1769년 영국 실크 핀쿠션.
- V&A, T.128-1992, 약 1770–1820년 영국 실크 편물 핀쿠션.
- V&A, The history of hand-knitting, 장식적 수편물과 1733년 핀쿠션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