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의 무늬보다 뒤꿈치를 먼저 보자: 11~12세기 이집트 귀속 면 편물 네 기록
자료 조사·작성: 뜨자뜨개 / DDUJA KNIT
오래된 양말을 보면서 가장 먼저 무늬를 세고 싶어진다. 이집트에 일반적으로 귀속된 11~12세기 면 양말 네 점을 베를린 국립박물관 소장 기록에서 나란히 펼치면 짙은 파란색의 띠와 문자를 닮은 형태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뜨는 사람에게 먼저 필요한 질문은 조금 다르다. 어디가 발끝이고 어디가 입구인가. 뒤꿈치를 따로 만든 흔적이 있는가. 소장처는 어디까지 실제 문자로 읽고, 어디부터 문자에서 빌린 장식이라고 부르는가.[1]~[4] 네 기록의 차이를 읽으면 같은 시대·재료·기법 표기 아래에서도 양말을 보는 순서가 달라진다.
네 등록번호를 한 켤레로 합치지 않기
베를린 국립박물관 이슬람미술관은 I. 7543, I. 7544, I. 7538, I. 7539 a를 각각 별도 등록품으로 공개한다.[1]~[4] 네 카드의 연대는 11~12세기 파티마 왕조 시대로 분류되고, 재료·기법은 면과 gestrickt, 즉 편물로 기록된다. 지리 표기는 ‘이집트’라는 일반적인 출처 범주다. 각 카드에는 무덤 출토품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정확한 발굴 장소, 제작 작업장, 만든 사람의 이름을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네 점을 특정 도시에서 같은 사람이 만든 한 세트처럼 이야기할 근거는 없다. 네 점을 합쳐 당시 이집트 모든 양말의 표준으로 삼을 수도 없다.
I. 7543은 짧은 양말의 일부다. 높이 31cm, 너비 34cm라는 소장처 치수는 남아 있는 편물 조각의 기록이다.[1] 위아래로 파란 줄과 톱니 모양 띠가 반복되지만 사진만으로 착용했을 때 발목에 얼마나 맞닿았는지를 복원하지 않는다. 가운데 구멍과 닳은 가장자리는 물건이 완전한 상태로 전해지지 않았음을 먼저 알려준다. 완성 형태를 억지로 그려 넣기보다, 남아 있는 띠가 어느 방향으로 둘러갔는지 관찰하는 편이 정확하다.

뒤꿈치를 읽는 일은 무늬를 읽는 일과 다르다
I. 7544는 네 점 가운데 긴 양말 형태가 가장 뚜렷하다. 소장처는 높이 51cm, 너비 15.5cm라고 기록하고 abgesetzter Ferse, 곧 별도로 구분된 뒤꿈치를 명시한다.[2] 사진 앞면에는 발목 위와 발 부분에 간격을 둔 띠가 있고, 두 번째 사진에서는 손상된 반대 면이 드러난다. 두 사진은 같은 등록번호의 앞뒤 구도이지 두 양말이 아니다. 발끝이 좁아지는 모습과 뒤꿈치의 위치는 볼 수 있지만 정확한 시작 코 수, 바늘 굵기, 뒤꿈치를 잇는 순서를 사진 두 장으로 확정할 수 없다.


I. 7538도 소장처가 분리된 뒤꿈치가 있는 양말의 일부라고 쓴다.[3] 치수는 높이 38cm, 너비 18.5cm다. 사진의 발 모양에는 뒤꿈치가 옆으로 돌출되어 보이고, 파란 무늬 띠는 다리와 발에 서로 다른 간격으로 놓인다. I. 7544와 형태가 비슷하다는 관찰은 가능하지만, 한쪽이 다른 쪽의 복제품이거나 같은 장인의 작업이라는 결론은 카드에 없다. 두 유물 사이에서 실제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은 뒤꿈치가 물건의 방향을 읽는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양말 도안을 펼칠 때도 무늬 반복 횟수보다 발끝·뒤꿈치·다리의 전환 지점을 먼저 찾으면 구조가 보인다.

문자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 같은 문장일까
I. 7543, I. 7544, I. 7539 a의 설명은 가파른 형태의 아랍 문자가 반복되며 이를 li-llāh(신을 위하여) 또는 축약된 allāh(신)로 읽을 가능성을 제시한다.[1][2][4] 박물관이 확정 번역문으로 적은 것이 아니다. 반면 I. 7538의 설명은 아랍 문자에서 유래한 장식이라고 말한다.[3] 네 양말에 같은 확정 문구가 짜여 있다고 쓰면 이 차이가 사라진다. 사진 속 파란 띠는 넓이와 간격을 볼 수 있는 시각 증거이고, 실제 문자의 판독은 소장처의 제한적 해석을 따라야 한다.
I. 7539 a는 소장처가 ‘양말의 앞쪽 발 부분’이라고 명명한 조각으로 높이 16.5cm, 너비 12cm다.[4] 발끝으로 모이는 편물과 그 위의 띠가 남아 있다. 길게 이어질 다리 부분이 없기 때문에 사진 2의 긴 양말처럼 입구에서 발까지 무늬가 어디에 반복됐을지 알 수 없다. 그 대신 발끝만 남은 물건에서도 무늬 띠가 신체 부위에 따라 어느 위치에 놓이는지 묻도록 한다. 복원 그림을 만들고 싶다면 없는 부분은 추정임을 먼저 표시해야 한다.

‘오래된 양말’만으로 편물의 기원을 말하지 않기
이보다 훨씬 이른 이집트 출토 양말도 있다. V&A의 손뜨개 역사 해설은 3~5세기 울 양말을 한 바늘에 실을 꿰어 고리를 만드는 nålbindning으로, 1100~1300년 무렵의 면 양말을 두 바늘 편물의 초기 예로 명확히 나눈다.[5] British Museum의 3~5세기 붉은 양말 카드도 기법을 단일 바늘 고리 제작 또는 needle netting으로 기록한다.[6] 비슷한 겉모습을 가진 오래된 양말을 모두 지금의 두 바늘 뜨개라고 부르면 다른 기술의 흔적을 지운다. 베를린의 네 카드가 직접 ‘면·편물’이라고 분류한 사실을 이른 울 양말의 분류에 소급하지도 않는다.
이 네 기록이 보여 주는 것은 발굴품에서 확인되는 물건의 부분과 소장처가 붙인 이름 사이의 거리다. 누가 양말을 신었는지, 어떤 바늘로 몇 코를 시작했는지, 똑같은 띠가 한 지역에서 어떤 뜻을 가졌는지는 이 카드들만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도안을 읽는 사람에게는 유용한 순서가 남는다. 첫째, 사진에서 물건의 남은 범위를 본다. 둘째, 입구·발끝·뒤꿈치가 어디인지 찾는다. 셋째, 장식 띠의 위치를 재료·기법 표기와 분리해 관찰한다. 넷째, 문자 해석처럼 소장처가 ‘가능성’이라고 표시한 대목은 그대로 가능성으로 전한다. 이렇게 읽어야 양말의 오래된 사진도 오늘의 도안과 정직하게 대화할 수 있다.
원자료와 사진 사용 조건
- Staatliche Museen zu Berlin, I. 7543.
- I. 7544.
- I. 7538.
- I. 7539 a.
- Victoria and Albert Museum, 손뜨개의 역사.
- British Museum, 1901,0314.35.
실제 소장품 사진 5장, AI 이미지 0장. 사진 2·3은 같은 I. 7544의 서로 다른 면이다. 다섯 사진의 박물관 카드에는 각 파일의 촬영자와 CC BY-SA 4.0이 표시돼 있고, 위의 개별 이미지 주소에서 모두 실제 로딩·시각 검수를 마쳤다. 박물관의 끊어진 원본 링크를 이미지 주소로 쓰지 않았다. 사진을 잘라내거나 재가공하지 않고 반응형 표시 크기만 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