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뜨개 역사 | 양말 두 켤레와 193쪽: 뉴질랜드 1915년 뜨개의 기록
양말 두 켤레와 193쪽: 뉴질랜드 1915년 뜨개의 기록
1915년 뉴질랜드의 한 여성이 가방에 넣을 만한 작은 뜨개책을 펼친다. 책은 193쪽이다. 양말을 어디서 줄일지, 실을 어떻게 이을지 읽는 동안 그의 손은 가족의 겨울옷을 넘어 바다 건너 전선에 닿는다. 이 장면을 단순히 ‘전쟁 중 여성들이 양말을 떴다’로 줄이면 중요한 물건과 사람들이 사라진다. 국립박물관에 남은 책 한 권, 당시 신문의 서평과 광고, 마오리 여성들의 구호 조직 기록, 남아 있는 군용 양말과 제작·구호 조직의 인물 사진을 함께 읽으면 뜨개가 기술·모금·돌봄의 서로 다른 언어였다는 사실이 보인다. [1][2][3]
역사와 배경
테파파 국립박물관이 소장한 《Her Excellency’s Knitting Book》은 1915년 8월 발행된 뉴질랜드 최초의 현지 출판 뜨개책으로 소개된다. 저자 표기는 총독의 부인 애넷 폴잠비, 곧 레이디 리버풀이고 출판사는 퍼거슨 앤드 오즈번이다. 박물관 기록의 책 크기는 가로 131mm, 세로 158mm, 두께 22mm다. ‘가방에 들어가는 책’이라는 설명은 이 물리적 크기를 보면 과장이 아니다. 다만 소장품 사진과 서지로 책의 모든 페이지를 판독한 것은 아니므로, 개별 도안의 정확한 코 수나 실 규격을 여기서 만들어 내지 않는다. [1]
1915년 8월 17일 《도미니언》은 책의 첫 장에 양말을 뜨고 낡은 발 부분을 다시 뜨는 법, 벙어리장갑 도안이 있으며 뒤이어 발라클라바·카디건·침상용 양말 등의 설명이 실렸다고 전했다. 9월 1일 《오타고 위트니스》는 초보자가 헷갈리기 쉬운 실 잇기, 늘림과 줄임, 털실 감기까지 소개했다고 평했다. 두 기사는 편집된 책의 기능을 비교할 수 있는 동시대 기록이지만 신문의 홍보성 어조까지 역사적 사실로 옮길 필요는 없다. 적어도 이 책이 단순한 애국 구호물이 아니라 실제 제작을 지도하려고 구성되었다는 점은 확인된다. [2][3]
국립박물관 기록은 1915년 5월에 ‘양말의 날’이 열렸다고 설명한다. 현역 군인의 양말 한 켤레가 길어야 2주 남짓 간다는 보고가 계기였다. 뉴질랜드 정부 역사 사이트는 같은 해 3월 레이디 리버풀이 병사 한 명당 두 켤레를 마련하자고 제안했고, 6개월 뒤 3만 켤레가 해외로 보내질 준비를 마쳤다고 기록한다. 숫자는 당시의 특정 구호 운동을 가리킨다. 모든 병사가 정확히 두 켤레씩 받았다는 증거는 아니며, 전국의 모든 편물 생산량으로 확대할 수도 없다. [1][4]
책의 판매 역시 구호 활동과 연결되었다. 《도미니언》은 수익금이 세인트존 앰뷸런스의 기지 병원으로 간다고 전했고, 《오타고 위트니스》는 책값 2실링과 광고료로 제작비를 충당한다는 설명을 실었다. 판매와 기부가 얽힌 출판 모델이다. 한 여성이 책을 사는 일은 도안을 구하는 일인 동시에 자금 모집에 참여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편물 노동을 자발적 희생의 미담으로만 읽을 수는 없다. 누가 실을 샀고, 누가 시간을 냈으며, 누가 그 결과를 분류하고 배송했는지는 별도의 질문이다. [2][3]
인물과 노동
레이디 리버풀의 이름은 책 표지와 구호 운동에 크게 남았다. 그러나 마오리 병사들을 위한 조직을 보면 한 사람의 후원자만으로 작동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뉴질랜드 문화유산부의 여성사 기록은 미리아 포마레와 레이디 리버풀이 1915년 마오리 병사 기금을 시작했다고 정리한다. 1917년에는 레이디 리버풀이 회장, 레이디 캐럴이 부회장, 그레이스 부인이 의장, 포마레가 명예 서기 겸 회계를 맡았다는 기록이 있다. 마오리 여성 위원회 28곳의 활동이 조정되었다는 당시의 진술도 제시된다. ‘총독 부인 한 사람이 양말을 보냈다’는 문장은 이런 조직 노동을 가린다. [5]
같은 자료는 미리아 포마레가 첫 파견대 512명에게 한 켤레씩 양말을 떠 주고 각각 금화 한 닢을 넣었다고 ‘전해진다’고 적는다. 이것은 후대 서술 속 전언이며, 현존하는 양말 512켤레를 하나씩 검사해 입증한 수량이 아니다. 오히려 숫자의 인상보다 중요한 것은 뜨개가 마오리 여성들의 편지, 음식, 타니코 장식과 함께 보낸 꾸러미의 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물건이 수신자에게 고향의 언어를 전했다. 포마레는 1918년 OBE를 받았고, 종전 뒤에도 귀환 군인들의 지원 신청을 도왔다. 전쟁이 끝나도 돌봄의 조직은 바로 끝나지 않았다. [5]
테파파가 소장한 베리 앤드 컴퍼니의 소녀 초상은 여성의 기술 교육이 더 어린 세대로 이어졌음을 생각하게 한다. 박물관은 사진 속 해리스 자매가 소녀 평화 스카우트였을 ‘가능성’을 말한다. 기록에 따르면 웰링턴의 스카우트 한 부대는 1914년 9월 양말과 모자를 모으는 뜨개 모임에 참여했다. 다만 이 초상의 소녀가 바로 그 모임에 참석했다는 자료는 없다. 사진은 참여한 특정 인물의 증명사진이 아니라, 동시대 청소년 조직의 모습을 보여 주는 보조 자료다. [6]
1928년 미리아 포마레의 여권 사진은 1915년 양말 제작 현장 사진이 아니다. 당시 인물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후대 기록일 뿐이다. 초상과 함께 읽을 때 비로소 책 표지의 귀족 여성만이 아니라 마오리 여성들의 조직과 조달 노동이 드러난다. 포마레의 역할을 한 장의 얼굴 사진에서 추측하지 않고, 여성 위원회의 업무를 기록한 문화유산부 자료와 대조한다. [5][9]
작품과 남아 있는 자료
1915년 책의 핵심 작품인 양말을 읽을 때 오늘의 도안을 곧장 대입하지 말자. 당시 신문이 명시한 ‘re-footing’은 낡은 발 부분을 다시 떠 쓰는 수선이다. 그래서 양말의 가치는 새 켤레의 완성 사진만이 아니라 닳는 부위와 다시 뜰 수 있는 구조에 있었다. 발꿈치·발바닥의 마모, 실의 내구성, 세탁 뒤 수축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다만 원본 페이지의 도식과 수치를 확인하기 전에는 이 특정 책이 어떤 발꿈치 방식이나 바늘 호수를 지시했는지 단정할 수 없다. [2]
구호 꾸러미의 표지는 물건이 이동한 흔적이다. 정부 역사 사이트의 사진은 양말과 함께 실려 간 라벨을 보여 주며, 출처를 테파파 소장번호 GH007347로 명시한다. 그 이미지는 재사용에 박물관 허락이 필요한 것으로 표시되어 있어 이 원고의 화보에는 넣지 않았다. 출처 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많이 넣는 것보다 이용 조건을 지키는 편이 사료를 오래 쓰는 길이다. [4]
화보의 책 두 사진은 같은 소장품 GH003690의 서로 다른 면이다. 소녀 초상 B.045687은 뜨개 장면이 아니며, 1928년 미리아 포마레 여권 사진도 1915년 현장을 보여 주지 않는다. 마지막 양말 사진은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의 다른 소장품이다. 박물관은 이를 제1차 세계대전기 뉴질랜드 원정군 보병이 착용한 발목 양말 한 켤레로 설명하며 길이 240mm, 폭 140mm를 기록한다. 이 양말이 레이디 리버풀 책의 도안대로 만들어졌거나 포마레가 떴다고 연결하는 증거는 없다. 서로 다른 기록의 관계와 빈틈을 그대로 남겨야 한다. [1][6][8][9]
1915년의 양말을 오늘 뜬다면 먼저 원본의 실 종류와 게이지, 발 길이, 뒤꿈치·발끝 구조, 수선 가능한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완성 치수 없이 현대 바늘과 실로 그대로 따라 뜨는 것은 역사 재현이 아니라 새 해석이다. 반대로 책의 기술을 읽기만 해도 배울 점이 있다. ‘가족의 옷을 뜨는 손’이 구호 물자의 규격과 배송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만나면 설명은 더 표준화되고, 출판물은 그 기술을 먼 독자에게 전달한다. [1][2][3]
전시 양말 사진은 실제 물건의 형태와 크기를 살펴보게 하지만, 사진만으로 바늘 호수나 당시의 게이지를 복원할 수는 없다. 1915년 신문이 소개한 발 부분 다시 뜨기와 실 잇기 설명을 읽은 뒤, 오클랜드 소장 양말의 치수와 구조를 별개의 비교 자료로 놓는다. 도안의 설명, 물건의 크기, 사용자의 기억이 각각 무엇을 말하는지 나누는 것이 재현의 출발점이다.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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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으로 다시 읽기
- 1914년 9월 · 웰링턴 소녀 평화 스카우트의 양말·모자 뜨개 모임이 박물관 기록에 남는다. [6]
- 1915년 3월 · 레이디 리버풀이 병사 한 명당 양말 두 켤레를 제안했다. [4]
- 1915년 5월 · 양말의 날 모금·제작 행사가 열렸다. [1]
- 1915년 8월 · 《Her Excellency’s Knitting Book》이 발행되었다. [1][2]
- 1915년 9월 · 《오타고 위트니스》가 책의 도안과 초보자용 기술 설명을 소개했다. [3]
- 1917년 · 마오리 병사 기금의 역할 분담과 지역 위원회 활동이 기록된다. [5]
- 1918년 · 미리아 포마레가 OBE를 받았다. 종전 뒤에도 귀환 군인의 지원 신청을 도왔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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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으며
뉴질랜드의 1915년 뜨개는 책 표지의 유명한 이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레이디 리버풀의 기금, 미리아 포마레와 지역 위원회의 조직, 스카우트의 교육과 실제 군용 양말의 사용은 같은 실을 각기 다른 목적으로 썼다. 193쪽짜리 작은 책은 그중 하나의 통로였다. 오래된 뜨개 사진을 볼 때 작품 이름에 더해 제작자, 사용자의 몸, 수선의 흔적, 꾸러미가 지나간 길을 묻는다면 전쟁기의 편물은 비로소 평면적인 미담에서 구체적인 생활사로 바뀐다.
사진을 읽을 때 사진 1·2는 테파파의 1915년 책 한 권에서 촬영한 서로 다른 면, 사진 3은 1913~1918년 웰링턴의 소녀 초상이다. 사진 4는 1928년 미리아 포마레의 여권 사진이며 전시 현장이 아니다. 사진 5는 오클랜드 박물관의 제1차 세계대전기 뉴질랜드 원정군 발목 양말 소장품이다. 책 도안과 그 양말의 직접적인 제작 관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자료와 사진 출처
본문의 번호는 다음 원문 자료를 가리킵니다. 사진의 저작권·이용 조건은 각 사진 아래 원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