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뜨개 역사 | 안니헨 시베른 뵌: 지역의 코를 ‘노르웨이 도안’으로 읽게 만든 1929년의 책
안니헨 시베른 뵌: 지역의 코를 ‘노르웨이 도안’으로 읽게 만든 1929년의 책

도안집을 펼치면 지역 이름이 무늬 이름처럼 보인다. 셀부, 세테스달, 텔레마르크. 하지만 책에 인쇄되기 전에도 그 무늬는 사람의 손에서 바뀌고 이동했다. 안니헨 시베른 뵌은 1920년대 말 여러 지역과 박물관을 다니며 편물 무늬를 기록했고, 1929년 그것을 《Norske strikkemønstre》라는 책으로 엮었다. 그녀의 공은 ‘노르웨이 무늬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흩어진 자료를 고르고 그리며 독자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꾼 데 있다. 이 차이를 알면 한 장의 차트를 읽을 때도 원래의 제작자, 수집자, 편집자가 각각 보인다. [1][2][3]
역사와 배경
안니헨 시베른은 1905년 당시 크리스티아니아였던 오슬로에서 태어났다. 노르웨이 대백과사전의 의복사 연구자 잉군 그리므스타드 클레프에 따르면, 1923~26년 국립 수공예·응용미술학교에서 공부했고 1928년에는 사촌 엘세 포울손과 함께 수공예 도안 사무실에서 일했다. 노르웨이 민속박물관에서도 일하며 소장품을 보았다. 1931년 올레 뵌과 결혼한 뒤 오늘 주로 쓰는 성 ‘시베른 뵌’이 되었다. 따라서 1929년 첫 책의 저자명을 당시의 이름 ‘안니헨 시베른’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1]
책을 만들기 위해 그녀는 셀부, 할링달, 텔레마르크, 예렌을 방문하고 민속박물관 등의 옷과 무늬를 살폈다. 딸들이 전한 회고에는 약 70개의 옛 무늬를 스스로 그려 모았다는 말이 나온다. 1929년 초판 서문은 가장 아름답고 여러 지역에 특징적이라고 판단한 무늬를 ‘모으고 다듬는’ 일을 목표로 적었다고 연구자는 설명한다. ‘모았다’와 ‘다듬었다’ 사이가 중요하다. 책의 차트는 과거 옷에서 저절로 나온 원본이 아니라, 취사선택과 도식화라는 편집 노동의 결과다. 1929년 초판은 출판 기록으로도 확인된다. [1][2]
그녀 이전에 노르웨이 사람들이 뜨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민속박물관의 세테스달 코프테 NF.1911-1228은 1911년에 이미 수집된 옷이다. 옷의 제작 시점이나 만든 사람의 이름은 사진 설명만으로 확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1929년 책보다 먼저 박물관에 들어왔음은 분명하다. 사진 1은 이 구체적인 물건을, 사진 2는 2010년 기계 편물용 펀치카드로 다시 그린 세테스달 무늬를 보여 준다. 둘을 같은 ‘전통’이라 뭉뚱그리면 물건의 시대와 도안을 재표현한 시대가 섞인다. [1][6][9]
클레프는 이 책이 지역과 무늬를 ‘노르웨이적인 것’으로 결합한 새로운 방식이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옷과 무늬가 국경 안에서만 태어나 보존된 순수한 원형이었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19세기 노르웨이 옷에도 수입 의복과 국제적으로 이동한 무늬의 지역적 변형이 있었다. 더 오래된 노르웨이 편물의 역사에서 실크 상의와 여덟 갈래 별무늬 역시 바깥에서 들어왔다. ‘노르웨이 무늬’는 움직이지 않는 기원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 오랫동안 쓰이고 다시 이름 붙여진 관계를 가리킨다. [1][4]

인물과 노동
한 여성의 책을 기념할 때 가장 쉽게 지워지는 사람들은 원래의 옷을 뜬 여성들이다. 1911년 수집 코프테의 사진에는 박물관 등록번호가 남지만 제작자의 이름은 이 사진 설명에 없다. 2018년 트론헤임 장터의 셀부 장갑 사진에는 여러 완성품이 놓여 있지만 각 장갑의 도안 작성자나 뜬 사람을 그 사진만으로 알아낼 수 없다. 1955년 민속박물관에 들어온 어부 장갑도 쓰임과 수집 연도는 읽을 수 있어도 모든 코를 만든 사람의 노동 일지는 아니다. 안니헨이 한 일은 바로 그런 물건을 ‘무늬’로 옮겨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다만 책의 저자와 옷의 원제작자를 같은 사람으로 적어서는 안 된다. [1][6][7][8]
안니헨은 수집자에 머무르지 않았다. 1930년 그녀가 설계한 당시 명칭 ‘Eskimo’ 스웨터는 무늬가 목둘레에 모인 원형 요크가 특징이었다. 노르웨이 대백과사전은 그 디자인이 그해 동명의 영화와 이누이트 구슬 장식에서 자극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그 이름은 1930년대 출판물의 역사적 표제이므로 그대로 인용하되, 오늘의 이누이트 사람들을 부르는 보편적 이름처럼 쓰지 않는다. 도안은 여성지 《Urd》에 소개됐고 후에 책에도 실렸으며, 손뜨개뿐 아니라 드람멘의 편물 공장에서도 제작됐다. 1930년 두 전시에 출품됐다는 기록까지 보면 그녀가 미술, 가내 수공예, 산업을 잇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1]
같은 해 신문 인터뷰에는 그녀와 예술가 프뢰위디스 호보르스홀름이 ‘예술·수공예·산업의 협업’을 원했다는 내용이 남는다. 미감에 대한 그들의 언어는 당시의 계몽적 태도를 담고 있어 오늘 그대로 칭송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름다운 무늬가 노동의 대가와 연결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은 중요하다. 누가 도안을 고르고 누가 생산하며 그 수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묻는 일은 1930년에도 현재에도 편물 산업의 질문이다. [1]
책이 여러 판과 영어판으로 이어지고, 이후 도안 작가들이 옛 무늬를 새 옷에 적용하면서 안니헨의 편집 방식은 오래 살았다. 그렇다고 후대의 모든 노르웨이 스웨터를 그녀의 직접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저자, 원본 옷의 제작자, 후대 변형 도안의 설계자는 각기 다른 사람이다. [1][3]

작품과 남아 있는 자료
사진 1의 세테스달 코프테는 박물관이 1911년 구입했다고 밝힌 실물이다. 몸판의 잔점, 넓은 테두리, 앞여밈이 어떻게 배치되는지 보자. 사진 2의 세테스달 무늬 그림은 안나 포르스베리가 2010년에 기계 편물용 펀치카드를 위해 만든 것이다. 원본 옷의 사진이나 안니헨의 1929년 차트를 복제한 것처럼 읽지 말고, 똑같이 ‘세테스달’이라 부르는 무늬가 매체를 바꾸며 어떻게 격자로 추상화되는지 비교하는 자료로 쓴다. 이 두 사진만으로 안니헨 책의 특정 쪽에 똑같은 무늬가 실렸다고 확인할 수는 없다. [6][9]
사진 3은 2018년 장터에서 찍은 셀부 장갑, 사진 4는 민속박물관의 어부 장갑이다. 둘 다 손을 덮는 물건이지만 필요한 정보는 다르다. 셀부식 배색 장갑을 뜰 때는 손등의 주무늬가 몇 코를 차지하는지, 손바닥의 잔무늬와 엄지 덧코가 어느 줄에서 시작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어부 장갑에서는 실의 두께, 바람과 습기에 견디는 밀도, 사용으로 닳은 위치가 먼저 궁금해진다. 사진은 무늬와 형태를 보여 주지만 실제 게이지, 원사의 혼용률, 착용자의 손 크기까지 대신 기록하지 않는다. [7][8]
사진 5의 루세코프테는 2008년에 찍힌 현대 의복이다. 박물관의 1911년 옷과 한 세대의 원본을 증명하기 위해 넣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가 가슴과 소매의 반복 무늬, 앞여밈과 테두리의 비율을 비교하도록 배치했다. 도안집에서 작은 모티프를 본 뒤 완성된 옷에 적용하려면 반복 폭이 몸둘레의 코 수에 어떻게 맞는지, 솔기나 앞단에서 모티프가 끊기지 않는지, 세탁 뒤 치수가 유지되는지를 견본으로 확인해야 한다. 안니헨이 책에서 권한 재사용의 정신은 ‘과거 옷을 한 치도 바꾸지 말라’가 아니라, 기록된 무늬를 실제 옷에 다시 맞춰 읽으라는 쪽에 가까웠다. 이 마지막 해석은 책의 목표를 설명한 연구자의 서술에 근거한 편집적 독해다. [1][10]
원형 요크의 1930년 스웨터와 세테스달 코프테는 구조도 다르다. 전자는 목둘레에 도안과 줄임을 집중시켜 몸통·소매를 연결하는 시각적 고리를 만든다. 후자는 몸판 전체의 반복과 앞여밈의 경계가 강하다. ‘노르웨이식’이라는 말 하나로 편물의 모든 구성법을 하나로 만들지 않는 것이 도안을 읽는 출발점이다. 스웨터 원본 사진은 권리 제한 때문에 이 글에 싣지 않았고, 그 구조와 출판 기록은 연구자의 글로만 확인한다. [1]

시간으로 다시 읽기
- 1905년 · 안니헨 시베른이 크리스티아니아에서 태어난다. [1]
- 1911년 · 사진 1의 세테스달 코프테가 노르웨이 민속박물관에 수집된다. [6]
- 1923~1926년 · 국립 수공예·응용미술학교에서 배운다. [1]
- 1928년 · 수공예 도안 사무실과 민속박물관에서 일하며 지역 자료를 조사한다. [1]
- 1929년 · 《Norske strikkemønstre》 초판이 출판된다. [1][2]
- 1930년 · 원형 요크 ‘Eskimo’ 스웨터가 여성지와 전시를 통해 소개된다. [1]
- 1952년 · 책의 영어판이 출판된다. [1]
- 1978년 · 안니헨 시베른 뵌이 사망한다. [1]

다시 읽으며
안니헨 시베른 뵌은 지역 편물을 책으로 옮기면서 무늬에 장소의 이름을 붙였다. 그 덕분에 독자는 셀부와 세테스달을 기억하지만, 책 밖에는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 제작자도 남아 있다. 다음에 ‘전통 노르웨이 도안’을 만나면 세 가지를 따로 보자. 실물이 언제·어디서 수집됐는지, 차트는 누가 언제 그렸는지, 지금 뜨는 옷에 맞추어 누가 다시 설계했는지. 그 사이에 뜨개의 역사와 저작의 역사가 함께 있다.
사진을 읽을 때 사진 1은 1911년 박물관 수집품의 2013년 촬영, 사진 2는 2010년 기계 편물용 재구성 도표, 사진 3은 2018년 판매 현장의 장갑, 사진 4는 1955년 박물관 수집 어부 장갑의 후대 촬영, 사진 5는 2008년 촬영한 현대 루세코프테다. 모두 안니헨이 직접 뜬 작품이나 1929년 책의 원본 그림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저작권이 제한된 안니헨의 초상과 책·스웨터 사진은 사용하지 않았다. 각 이미지 아래 원본 파일, 촬영자, 이용 조건을 표시한다.
자료와 사진 출처
본문의 번호는 다음 원문 자료를 가리킵니다. 사진의 저작권·이용 조건은 각 사진 아래 원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