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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에 한 무늬는 없다: 셰틀랜드 레이스, 페어아일, 간지와 도안의 글자

시대 16세기 가내 편물부터 20세기 지역 유물과 도안 출판까지
인물 셰틀랜드 숄 제작자 에이미 존스턴, 페어아일 편물가 애니 톰슨, 도안 저자 제인 고갱과 마저리 틸럿슨
주요 유물 V&A의 셰틀랜드 숄·페어아일 점퍼·간지 소장 기록, 19세기 편물 도안, 셰틀랜드 박물관의 전시

2014년 셰틀랜드 박물관에서 촬영한 페어아일 편물 전시
사진 1. 2014년 셰틀랜드 박물관에서 촬영한 페어아일 편물 전시 · © Julian Paren / Geograph · CC BY-SA 2.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영국 뜨개를 '페어아일 스웨터' 한 벌로 떠올리면 중요한 실마리들이 빠진다. 셰틀랜드의 숄은 공기처럼 얇아 반지를 통과하는 솜씨를 겨루었고, 페어아일의 점퍼는 두 색씩 쓰는 띠무늬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해안의 간지는 조밀한 편물과 단단한 착용감이 먼저다. 게다가 이 기술을 종이에 적는 방식도 17세기의 긴 문장에서 20세기의 짧은 약어까지 달라졌다. 유물의 제작자와 도안의 저자, 생산을 지탱한 노동을 함께 읽어야 세 지역이 비로소 다른 얼굴을 갖는다. [1][2]

첫 사진은 2014년 셰틀랜드 박물관의 페어아일 전시다. 이 글의 사진은 원문 V&A의 다섯 유물을 복사한 것이 아니다. 셰틀랜드의 1886년 삽화와 현대 박물관 전시, 2018년 간지 제작 장면 등을 따로 고른 것이다. 같은 지역이라도 사진의 시간과 저작자를 분리해 읽는다. [6][7][8][9][10]

역사와 배경

V&A의 영국·아일랜드 지역 편물사에 따르면 셰틀랜드의 가장 이른 완형 편물 자료 가운데는 17세기 군니스터 무덤의 스타킹과 장갑, 지갑, 모자가 있다. 18세기 초에는 섬 주민들이 양말류를 네덜란드·독일 상인과 거래했다. 얇은 레이스 숄이 셰틀랜드의 이름과 강하게 결합한 시기는 1840년대 이후다. 교통이 나아지며 외부의 유행품이 섬에 들어왔고, 주민은 그 형식을 자기 실과 조직으로 바꾸었다. '고립된 섬에서 옛날부터 한 가지 레이스만 떴다'는 그림과 다른 역사다. [1]

페어아일은 셰틀랜드 본섬과 같은 지명이 아니다. 스코틀랜드 북쪽의 별도 섬이며, 오늘 알려진 가로 띠의 배색 스웨터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으로 무한히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V&A는 그 양식의 스웨터가 전쟁 무렵 등장하고 1920년대 왕세자의 골프 복장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적는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의 난파자가 무늬를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전설로 소개한다. 이웃 스칸디나비아의 영향을 가리키는 증거도 있으므로, 낭만적인 단일 기원보다 실제 교역과 기술 이동을 보아야 한다. [1]

영국 해안의 간지는 또 다른 필요에서 형태를 얻었다. V&A가 설명하는 전통 간지는 짙은 남색의 조밀한 실, 높은 목, 몸에 가까운 소매로 바람을 막는 옷이다. 떠 가면서 입을 사람의 몸을 재기도 했다. 지역별 도형을 무조건 고정된 '가문 표식'으로 읽기 어렵다. 청어철을 따라 이동한 여성 노동자들이 무늬를 다른 항구로 옮기기도 했고, 후대 조사자가 채록한 무늬가 그 지역의 표준처럼 굳어졌을 수도 있다. 완성품을 만든 편물가와 그 일을 기록한 사람의 역할을 나눠 보아야 한다. [1]

도안의 문자도 생산 방식에 따라 바뀌었다. 1655년 영어로 인쇄된 양말 뜨기 설명은 한 문장처럼 길고 바늘 크기와 게이지가 없다. 1830~1840년대 학교 교본과 가정용 지침은 치수와 코의 순서를 더 다루었다. 1888년 시작된 《Weldon's Practical Needlework》는 편물 지면을 넓혔고, 1906년에는 짧은 약어를 표준화했다. 실 회사는 자기 실을 쓰는 도안을 인쇄해 가게에서 팔았다. 종이에 남은 명령어의 진화는 여성들의 손기술이 산업과 출판의 언어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2]

셰틀랜드의 소득을 말할 때는 ‘섬 전체가 언제나 같은 뜨개를 했다’고 압축하면 안 된다. V&A는 1901년 무렵 주민 약 3분의 2가 양말류 거래에 관여했다고 적지만, 이는 특정 시점의 지역 경제 기록이다. 1840년대 레이스의 성장, 제1차 세계대전 무렵 페어아일식 점퍼의 출현, 1920년대의 유행은 서로 다른 시간층이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한 장의 사진에 모두 겹쳐 놓으면 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1]

1886년 셰틀랜드의 삶을 그린 책에 수록된, 걸으며 뜨개질하는 여성 삽화
사진 2. 1886년 셰틀랜드의 삶을 그린 책에 수록된, 걸으며 뜨개질하는 여성 삽화 · 1886년 책 삽화 /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인물과 노동

V&A가 소장한 1935년 셰틀랜드 언스트의 레이스 숄에는 에이미 존스턴이라는 제작자의 이름이 남아 있다. 같은 글은 레이스 장인이 투입한 수많은 코에 비해 적은 수입을 얻었다고 덧붙인다. 반지를 통과할 만큼 얇다는 칭찬만 할 때 생계의 조건은 사라진다. 그 숄은 한 사람의 기교와 지역 시장의 불균형을 함께 보여 주는 물건이다. [1]

1997년 페어아일 점퍼의 소장 기록에는 애니 톰슨의 이름이 있다. 이를 익명의 '민속무늬'로만 부르면 제작자의 설계와 실행이 지워진다. 반대로 옛 차트를 모두 애니가 처음 발명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전해진 무늬와 한 벌의 실제 제작은 서로 다른 저자성이다. 전시 설명에 남은 이름, 제작 연도, 섬이라는 세 표지는 이 구분을 가능하게 한다. [1]

도안 저자 가운데 제인 고갱은 1840년대 책에서 편물 코를 표시하는 복잡한 문자 기호를 고안했다. 마저리 틸럿슨은 1908년 실 회사 J&J 볼드윈에 채용되어 'Beehive' 도안 시리즈를 썼지만, 리플릿에는 이름이 실리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쓰는 편물 약어의 편리함 뒤에는 설명을 시험하고 독자가 재현할 수 있게 만든 여성의 보이지 않는 편집 노동이 있다. 이름이 확인되는 저자와 이름 없이 남은 제작자 사이를 왕복하며 읽어야 한다. [2]

1886년 책 삽화에 등장하는 걸으며 뜨개질하는 여성에게는 이름이 남지 않았다. 그녀를 존스턴이나 톰슨의 초상으로 소개할 수 없다. 반면 박물관 소장 기록에는 존스턴이 1935년 언스트의 숄 제작자로, 톰슨이 1997년 페어아일 점퍼 제작자로 기록된다. 사진과 유물의 서로 다른 기록 방식이 어떤 노동자의 이름을 남기고 지우는지 살피는 것도 뜨개 인물사의 일부다. [1][7]

아만다 슬레이터가 2018년 제작 중 촬영한 간지 스웨터
사진 3. 아만다 슬레이터가 2018년 제작 중 촬영한 간지 스웨터 · © Amanda Slater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작품과 남아 있는 자료

V&A의 1935년 에이미 존스턴 셰틀랜드 숄 소장 기록은 투각 조직을 한 작품의 시간·장소·제작자와 연결한다. 섬의 레이스 숄은 단순히 구멍을 많이 내는 천이 아니다. 바늘에서 늘리고 줄인 코가 만드는 구멍의 배열, 비스듬한 가장자리, 세탁과 블로킹 뒤의 치수가 서로 영향을 준다. 자료가 알려 주는 제작 원리는 유익하지만, 사진 없이 정확한 코 수나 존스턴 개인의 도안 차트를 복원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래의 현대 레이스 부분 사진은 투각의 구조를 관찰하기 위한 비교 이미지다. 셰틀랜드 산품이나 존스턴의 원작이 아니다. [1][9]

페어아일식 배색은 한 행에 두 가지 색실을 쓰며 안쪽에 쓰지 않는 실을 가로질러 보낸다. 안쪽 실을 너무 짧게 당기면 겉면이 오그라든다. 셰틀랜드 박물관의 2014년 전시 사진은 여러 편물을 한자리에 보여 주지만, 각 물건의 연대와 제작자가 사진 설명에 적혀 있지는 않다. 그 전시품을 V&A의 1920년대 골프 점퍼나 애니 톰슨의 1997년 점퍼와 동일한 물건으로 읽지 않는다. 두 박물관의 자료가 확인하는 것은 양식의 지속과 변화이지, 한 벌의 소유권이 아니다. [1][6]

간지는 두꺼운 해안의 작업복으로 읽어야 한다. V&A 소장 1980년 스테이시스 간지의 지역·제작 연도는 물건의 기록에 속한다. 여기 실은 2018년 아만다 슬레이터가 작업 중 촬영한 자신의 간지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원통으로 몸통을 뜨고 소매 코를 집어 내려간다. 그 한 사람의 제작 과정은 전통적 구성법을 눈으로 읽는 예가 되지만, 모든 간지가 동일하게 만들어졌다고 확대할 수 없다. 몸통 둘레, 겨드랑이의 여유, 목과 소매 끝의 밀도, 수선하기 쉬운 조직을 실제 도안에서 확인하자. [1][8]

도구와 문자도 작품의 일부다. 1886년 삽화는 이동 중 뜨개질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V&A는 요크셔 데일스에서 허리에 뜨개집게를 고정해 손을 지지했다고 설명한다. 제인 고갱의 1840년 도안 기호와 1906년 《Weldon’s》의 약어는 손의 움직임을 종이에 옮기려는 서로 다른 편집 선택이다. 1842년 판본의 고갱 책 원문도 자료 목록에서 열람할 수 있다. 오늘의 도안 독자는 기호 이름만 외우기보다 처음 몇 단을 시험편으로 떠 보고, 치수·게이지가 없는 옛 지침을 현재의 실에 옮길 때 무엇을 다시 계산해야 하는지 살펴야 한다. [1][2][11]

2006년에 촬영된 현대 레이스 숄의 투각 부분, 셰틀랜드 유물은 아님
사진 4. 2006년에 촬영된 현대 레이스 숄의 투각 부분, 셰틀랜드 유물은 아님 · © Jill Robidoux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시간으로 다시 읽기

  1. 17세기 · 군니스터 무덤에 셰틀랜드의 이른 편물 완형 자료가 남았다. [1]
  2. 1655 · 영어로 인쇄된 초기 양말 뜨기 지침이 출판됐다. [2]
  3. 1840년대 · 셰틀랜드에서 섬 특유의 얇은 레이스 숄 생산이 커졌다. [1]
  4. 1888 · 《Weldon's Practical Needlework》의 편물 출판이 시작됐다. [2]
  5. 1906 · 《Weldon's》이 간결한 편물 약어를 도입했다. [2]
  6. 1920년대 · 페어아일 계열 점퍼가 골프 복장과 패션으로 확산됐다. [1]
  7. 1935 · 에이미 존스턴의 셰틀랜드 숄이 제작됐다. [1]
2011년 촬영한 러윅의 셰틀랜드 박물관 외관
사진 5. 2011년 촬영한 러윅의 셰틀랜드 박물관 외관 · © Clemensfranz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다시 읽으며

영국 뜨개의 역사는 한 벌의 페어아일 스웨터로 끝나지 않는다. 셰틀랜드 레이스의 얇은 실, 섬의 두 색 배색, 해안의 조밀한 간지, 요크셔의 이동 노동, 그리고 문장을 약어로 바꾼 도안 편집이 다른 경제와 시간에 놓여 있다. 박물관의 제작 연도와 실명을 확인하면 ‘전통’이라는 말 아래 가려졌던 손이 나타난다. 다음에 영국 도안을 펼치면 지역명만 보지 말고 원본 유물의 연대, 사진의 실제 대상, 설계자와 편물가의 구분, 게이지와 착용 목적을 함께 확인해 보자.

사진을 읽을 때 사진 1은 2014년 셰틀랜드 박물관에 전시된 페어아일 편물, 사진 2는 1886년 셰틀랜드 책의 삽화, 사진 3은 2018년 아만다 슬레이터의 제작 중 간지, 사진 4는 2006년 촬영된 현대 레이스 숄의 일부, 사진 5는 2011년 러윅 셰틀랜드 박물관 외관이다. 어느 사진도 V&A의 존스턴 숄, 톰슨 점퍼, 1980년 스테이시스 간지 그 자체를 보여 주지 않는다.

자료와 사진 출처

본문의 번호는 다음 원문 자료를 가리킵니다. 사진의 저작권·이용 조건은 각 사진 아래 원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자료 1 · www.vam.ac.uk
  2. 자료 2 · www.vam.ac.uk
  3. 자료 3 · www.vam.ac.uk
  4. 자료 4 · www.vam.ac.uk
  5. 자료 5 · collections.vam.ac.uk
  6. 자료 6 · commons.wikimedia.org
  7. 자료 7 · commons.wikimedia.org
  8. 자료 8 · commons.wikimedia.org
  9. 자료 9 · commons.wikimedia.org
  10. 자료 10 · commons.wikimedia.org
  11. 자료 11 · archiv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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