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닥 위문품 기금의 손뜨개: 넬 캐머런과 동료들에게 보낸 양말

1942년 11월, 멀리 떨어진 병사가 회사 동료들에게 짧은 편지를 보냈다. 지미 존스 일병은 코닥 직원 위문품 기금의 회보 10호를 받았고, 새 우편 방식인 에어그래프가 흥미롭다고 적었다. 편지에는 양말의 도안도, 뜬 사람의 이름도 없다. 그러나 이 작은 종이는 호주 멜버른의 공장과 전선 사이에 편물·편지·소식지가 함께 오갔다는 사실을 묻는 출발점이다. Museums Victoria가 보존한 물건과 해설을 나란히 읽으면, 전시 뜨개가 단순한 개인 취미가 아니라 직장 동료들이 운영한 연락과 돌봄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다. [1][2]

코닥 애버츠퍼드 직원에게 수여된 위문품 기금 감사 명판의 사진
사진 1. 애버츠퍼드 직원에게 수여된 감사 명판 사진 MM 96388. Museums Victoria · Public Domain. 소장기관 설명·재사용 조건 · 이미지 파일. 이 명판은 양말 자체의 사진이 아니다.

회사 안에서 만들어진 작은 연락망

코닥 오스트랄라시아는 1941년 Kodak Comforts Fund를 세웠다. 기금의 의장은 넬리 엘마 ‘넬’ 캐머런이었다. 직원들은 돈과 물품을 기부하고 모금 행사를 열어 입대한 동료들을 지원했다. Museums Victoria의 역사 해설은 이들이 편지를 쓰고 회사 소식을 담은 회보를 보내며, 손뜨개 양말·발라클라바·장갑이 포함된 따뜻한 옷 꾸러미와 우편환을 전달했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손뜨개’는 소장기관이 인용한 회사사 원고의 표현이다. 이 자료만으로 특정 양말의 코 수, 실의 종류, 제작자별 생산량을 확정할 수는 없다. [1]

이 기금은 호주 전역의 Australian Comforts Fund와 이름과 활동이 비슷하지만 별개의 코닥 직원 조직이다. 앞서 발행한 호주 전시 양말 글이 적십자·지역 모임·전국 위문품 기금의 작업을 다뤘다면, 이 글은 한 회사의 동료 네트워크와 그 기록물에 집중한다. 1941년부터 1946년까지의 회보를 다룬 박물관 해설에 따르면 각 호에는 지점별 입대, 전사·부상 소식, 위문품, 복무 중 직원의 편지 발췌와 이후 전역·진급 소식이 실렸다. 손으로 뜬 물건만큼이나 그것을 받는 사람이 고향과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려는 기록이 중요했다. [3]

1942년 지미 존스 일병의 에어그래프 편지와 봉투
사진 2. 지미 존스의 에어그래프 편지 HT 21480 중 재사용 허용된 첫 번째 사진. Museums Victoria · CC BY 4.0. 소장품·재사용 조건 · 이미지 파일. 같은 기록의 다른 사진은 All Rights Reserved라 사용하지 않았다.

편지 한 장이 보여 주는 전달 과정

존스 일병이 1942년 11월 11일 보낸 에어그래프는 기금 의장에게 주소를 둔다. 박물관 기록에 따르면 그는 회보 10호와 군 복무 중인 코닥 직원 수를 언급한다. 실물은 마이크로필름에서 인쇄한 편지와 갈색 봉투, 붙어 있는 작은 필름 조각으로 구성된다. 편물은 사진으로 남아 있지 않아도, 그 꾸러미를 만든 조직과 수신자를 잇는 우편 기록은 남았다. 편지를 양말 수령 확인서로 과장해서는 안 된다. 이 편지가 증명하는 것은 회보와 연락 경로이지, 특정 양말 한 켤레의 도착이 아니다. [2]

1945년 8월 25일자 ‘승리호’ 회보 36호의 소장 기록은 이 연락망이 전쟁 말까지 이어졌음을 보여 준다. 회보는 12쪽짜리 타자 문서로 설명되며, 기금 자원봉사 직원들이 편집했다. 박물관은 회보 전체가 1941~1946년 1~40호로 이어졌다고 적는다. 해당 문서 사진은 재사용 허용 표시가 없어 여기에 싣지 않고 원본 목록으로만 연결한다. 이렇게 권리를 확인하는 과정도 자료 읽기의 일부다. [4]

넬 캐머런에게 수여된 방패 모양 감사 명판의 기록 사진
사진 3. 넬 캐머런 개인에게 수여된 방패형 감사 명판 사진 MM 96381. Museums Victoria · Public Domain. 소장품·재사용 조건 · 이미지 파일. 애버츠퍼드 직원 전체의 명판과 수여 대상이 다르다.

넬 캐머런의 이름과 두 개의 감사 명판

전쟁이 끝난 뒤 시드니 지부의 제대 군인들은 넬 캐머런에게 개인 감사 명판을 수여했다. 박물관이 보존한 사진은 방패 모양의 명판에 그녀의 이름과 위문품 기금에 대한 봉사를 새긴 모습을 보여 준다. 다른 명판 HT 9028은 개인이 아니라 애버츠퍼드 직원 전체에게 주어졌다. 금속을 나무 판에 고정한 이 실물의 길이는 44.35cm, 너비 27.5cm, 높이 3cm로 기록돼 있다. 두 감사의 대상을 하나로 합치면 의장 한 사람의 역할과 여러 동료의 노동이 동시에 흐려진다. [5][6]

애버츠퍼드 직원 전체에게 수여된 금속·목재 감사 명판 실물
사진 4. 애버츠퍼드 직원 전체에게 수여된 명판 실물 HT 9028. 사진 Jennifer McNair / Museums Victoria, CC BY 4.0; Courtesy of Kodak (Australasia) Pty Ltd. 소장품·재사용 조건 · 이미지 파일. 사진 1과 같은 감사 대상을 보여 주는 별도 사진 파일이다.

기금의 규모를 말할 때에도 범위를 지켜야 한다. 박물관 역사 해설은 기금이 1946년 6월 30일 문을 닫을 때까지 7,275파운드 이상을 모았고, 그중 6,486파운드 이상이 주로 코닥 직원과 부양가족을 위한 위문품에 쓰였다고 전한다. 이 금액 전부를 양모 구입비로 환산하거나 양말 생산량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은 돈의 일부는 전사 직원의 자녀를 위한 보험 증서에 쓰였다고 해설한다. 편물 꾸러미는 더 큰 돌봄 회계 속의 한 항목이었다. [1]

1952년 코닥 여성 직원 다섯 명의 단체 사진, 가운데에 넬 캐머런
사진 5. 1952년 코닥 여성 직원과 넬 캐머런(왼쪽에서 세 번째)의 사진 MM 142933. Museums Victoria · Public Domain · Courtesy of Kodak (Australasia) Pty Ltd. 소장품·재사용 조건 · 이미지 파일. 전쟁 뒤 촬영된 인물 사진이며 전시 편물 제작 장면이 아니다.

양말이 남지 않았을 때 읽을 것

오늘 이 기록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손뜨개 양말·발라클라바·장갑이 보내졌다는 회사사 해설, 회보의 발행과 병사의 편지, 공로를 기린 두 명판이다. 그러나 어느 직원이 어떤 무늬를 떴는지, 양말 발뒤꿈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실제 꾸러미에 몇 켤레가 들어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독자가 오래된 전시 뜨개 도안을 만난다면 조직 이름과 연도, 편물의 실제 사진 여부, 회보나 편지 같은 전달 기록을 먼저 구별해 보자. 사진이 없는 물건을 상상으로 복원하는 대신, 기록이 닿는 지점과 멈추는 지점을 표시하는 것이 이 뜨개의 역사를 더 정확하게 만든다.

원문 자료

  1. [1] Museums Victoria, Kodak Wartime Comforts Fund
  2. [2] HT 21480, Jimmy Jones Airgraph
  3. [3] Kodak WWII Staff Service Bulletin, 1941–1946
  4. [4] HT 36420, Victory Issue No. 36
  5. [5] MM 96381, Nell Cameron plaque photograph
  6. [6] HT 9028, Abbotsford staff plaque
  7. [7] MM 142933, 1952 staff portr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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