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보다 먼저 입구를 보자: 빈 박물관의 1817·1830년 비즈 편물 주머니

자료 조사·작성: 뜨자뜨개 / DDUJA KNIT

작은 주머니를 볼 때 눈은 꽃이나 반짝이는 구슬로 먼저 간다. 그러나 무언가를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이 되려면 입구가 닫히고, 몸체가 늘어져도 형태가 버티며, 끈이나 고리가 손과 옷 사이에서 제 몫을 해야 한다. 빈 박물관이 보관하는 두 편물 주머니는 그 순서를 다시 보게 만든다. 1817년의 거의 정사각형 주머니와 1830년 무렵의 길쭉한 주머니는 모두 박물관이 knitted로 기록하지만, 입구의 부속·리본·술은 서로 다르게 보인다.[1][2] 같은 박물관의 뒤이은 두 주머니까지 나란히 놓으면 더 중요한 경계도 드러난다. 비슷한 겉모습이 모두 같은 뜨개 기법을 증명하지는 않는다.[3][4]

1817년: 앞면보다 입구를 먼저 읽기

소장번호 M 11042의 연도는 1817년, 너비는 9.5cm, 길이는 9cm다. 박물관은 실크실·유리 구슬·금속·장식끈·실크 술을 재료로 적고 기법을 편물이라고 분류한다.[1] 사진에서 한쪽 면에는 꽃과 글자로 보이는 표식, 다른 면에는 1817이라는 숫자와 꽃이 보인다. 표식이 누구의 이름인지, 숫자가 실제 제작일을 뜻하는지까지 사진만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박물관이 기록한 연대와 물건 표면의 숫자가 일치한다는 관찰만 가능하다.

위쪽 가장자리를 확대해 보면 작은 금속 고리들이 잇달아 있고 얇은 끈이 위로 뻗는다. 아래에는 짙은 파란 술이 붙는다. 고리와 끈의 정확한 조립 순서나 원래의 여밈 동작은 소장 카드에 설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특정 잠금 방식의 복원 도안인 것처럼 말할 수 없다. 그래도 편물 바탕 자체와 별개로 입구에 다른 재료가 모여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주머니를 설계할 때 코로 만든 표면만이 아니라 열린 가장자리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독립적인 문제라는 것을 보여 주는 사진이다.

1817년 빈 박물관 편물 비즈 주머니의 꽃무늬 면과 윗단 금속 고리
사진 1. Wien Museum M 11042의 한 면. 윗단의 금속 요소·끈과 아래 술을 볼 수 있다. 소장품·권리 기록 · 사진 파일 496444_default.webp. 사진: Birgit und Peter Kainz / Wien Museum, CC BY 4.0; 원본 크기를 바꾸지 않고 화면 표시만 조절했다.

반대편의 1817 표기는 같은 물건이 두 면을 가진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두 사진을 두 점의 주머니로 세면 물건의 구조도 잘못 읽힌다. 한 면의 표식과 다른 면의 날짜는 사용자에게 어느 쪽을 보이게 했는지 묻도록 하지만, 실제 착용 방향은 기록돼 있지 않다. 소장 사진은 물건을 평평하게 펼쳐 보여 주는 촬영 장면이다. 이 상태를 당시 사람이 몸에 달고 다닌 모습으로 바꾸어 상상해서는 안 된다.

같은 1817년 편물 주머니 반대편의 숫자와 꽃 장식
사진 2. 사진 1과 같은 유물의 다른 면. 숫자와 꽃이 보이지만 표식의 주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Wien Museum M 11042 · 사진 파일 496442_default.webp. 사진: Birgit und Peter Kainz / Wien Museum, CC BY 4.0.

1830년 무렵: 길어진 몸체와 다른 손잡이

두 번째 편물 주머니 M 9000은 1830년 무렵으로 기록되며 너비 11.5cm, 높이 16.5cm다. 재료란에는 유리 구슬·실크실·실크 술뿐 아니라 금속 고리, 실크 리본, 실크 태피터도 들어 있다.[2] 첫 주머니와 마찬가지로 편물 표면만으로 완성된 물건이 아니다. 사진에서는 남청색 바탕에 점처럼 박힌 작은 반짝임과 갈색·옅은 푸른색 가로 띠, 길게 올라가는 어두운 리본, 아래의 술이 구별된다. 1817년 물건보다 세로로 긴 형태이며, 폭이 있는 리본은 가는 끈과 시각적으로도 다르다.

태피터가 재료란에 적혔다는 것은 실크실과 별도의 직물도 포함됐다는 중요한 단서다. 다만 카드가 안감의 유무와 재단법, 봉합 위치, 리본이 실제로 어느 경로로 통과하는지까지 밝히지는 않는다. 겉면 사진 하나를 보고 안쪽을 완성 도안처럼 그릴 수 없다. 이 주머니가 무엇을 담았는지, 리본을 손목에 걸었는지 혹은 옷에 묶었는지도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금속 고리와 리본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어떻게 쓰였는가라는 질문을 구분해야 한다.

1830년 무렵 빈 박물관 비즈 편물 주머니의 가로 띠와 실크 리본
사진 3. Wien Museum M 9000, 1830년 무렵. 박물관은 편물 기법과 금속 고리·실크 리본·태피터를 기록한다. 소장품·권리 기록 · 사진 파일 1079485_default.webp. 사진: Birgit und Peter Kainz / Wien Museum, CC BY 4.0.

같아 보이는 ‘주머니’도 기법은 다르다

박물관의 세 번째 물건 M 9001은 1835~40년, 너비 12.5cm·길이 18cm로 기록된다. 실크실·강철 구슬·장식 술·실크 태피터가 재료다.[3] 화면에는 녹색 끈과 주름 잡힌 듯한 윗단, 녹색·붉은색의 볼록한 장식, 아래 술이 보인다. 1817년과 1830년의 두 물건을 사진으로만 훑으면 이 물건도 같은 계열의 편물이라고 쉽게 이름 붙이기 쉽다. 그러나 박물관은 제작법을 Nadelarbeit?, 곧 물음표가 붙은 바느질 작업으로만 적는다. 편물이라고 확정한 두 소장 카드와 기록의 강도가 다르다. 이 물건을 ‘세 번째 편물 주머니’라고 세지 않고, 닮은 용기의 외형만으로 코의 기법을 판정할 수 없다는 비교물로 둔다.

1835년에서 1840년 사이 주머니의 녹색 조임끈과 돌출 장식; 제작법은 미확정
사진 4. Wien Museum M 9001. 박물관의 기법 표기는 Nadelarbeit?로, 뜨개로 확정되지 않았다. 소장품·권리 기록 · 사진 파일 494054_default.webp. 사진: Birgit und Peter Kainz / Wien Museum, CC BY 4.0.

더 늦은 1863년 무렵의 M 14700은 이름부터 Geldtasche / Geldkatze, 곧 돈주머니로 기록된다. 면사·금속·황동으로 만든 길이 32.6cm, 너비 10.4cm의 긴 물건이다. 첫 사진에서는 가느다란 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양쪽이 부풀어 있으며, 두 번째 사진에서는 가운데가 열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4] 하지만 이 물건의 기법란은 명백하게 crocheted, 코바늘이다. 이름에 ‘주머니’가 들어가고 입구가 보인다는 이유로 1817년의 편물에 합칠 수 없다. 연대가 뒤라는 사실만으로 ‘편물이 코바늘로 대체됐다’는 역사도 쓸 수 없다. 서로 다른 네 소장품의 사진은 기법과 여밈의 다양성을 보여 주지만, 빈 전체의 유행을 통계로 말해 주지는 않는다.

1863년 무렵 코바늘 돈주머니의 길쭉한 몸체와 열린 가운데
사진 5. Wien Museum M 14700의 열린 방향 사진. 이 물건은 박물관이 코바늘(crocheted)로 분류한 비교품이며 앞의 편물 주머니가 아니다. 소장품·권리 기록 · 사진 파일 2795421_default.webp. 사진: Birgit und Peter Kainz / Wien Museum, CC BY 4.0.

구슬보다 중요한 것은 증거의 순서

오스트리아 민속문화 사전의 ‘바느질 작업’ 항목은 19세기 비즈 편물 돈주머니에서 아주 작은 유리 구슬을 실의 고리에 받아 넣었다고 설명한다.[5] 이는 비즈 편물이라는 기법의 시대적 배경이다. 그렇다고 네 박물관 물건 각각의 구슬을 정확히 어떤 순서로 꿰었는지, 몇 코로 시작했는지까지 알려 주는 제작 기록은 아니다. 특히 M 9001의 기법 물음표를 이 일반 설명으로 지울 수 없다. 재료란의 유리 구슬과 강철 구슬도 서로 바꾸어 부르면 안 된다.

주머니를 쓰는 역사에는 한 가지 보편적인 ‘교체 순서’도 없다. 런던의 V&A가 연구한 여성의 허리 묶음 주머니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사용됐고, 손가방과 오랫동안 공존했다.[6] 이는 영국·유럽 복식의 비교 맥락이지 빈 박물관 주머니의 소유자가 무엇을 안에 넣고 어떻게 착용했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는 아니다. 빈의 네 카드에는 제작자 이름도 남지 않는다. 사진을 찍은 Birgit와 Peter Kainz의 이름은 크레딧으로 확인되지만, 두 사람이 19세기의 제작자라는 뜻은 물론 아니다.

다음 편물 소품 도안에서 살펴볼 것

오늘 작은 편물 주머니의 도안을 펼친다면, 먼저 무늬가 아니라 다섯 지점을 확인해 보자. 입구는 조임끈을 통과시키는가, 금속 틀이나 고리를 다는가. 몸체의 편물이 늘어질 때 안감이 필요한가. 리본은 잡는 부분인가, 조이는 부분인가. 아랫술은 무게와 외형을 바꾸지만 실제 마감선은 어디인가. 마지막으로 사진의 겉면만 볼 수 있는지, 뒤집은 면이나 안쪽 기록까지 있는지 묻자. 이 질문들은 1817년이나 1830년 물건의 확정 복원법이 아니다. 두 편물 주머니가 남긴 관찰 순서다. 비즈가 빛나는 표면을 지나 위쪽의 고리·끈·리본과 태피터 재료 표기를 읽을 때, 작은 장식품은 비로소 구조를 가진 용기로 보인다.

원자료와 사진 재사용 조건

  1. Wien Museum, Beutel (Ridikül), M 11042 — 1817년, 편물, 재료·치수·사진별 CC BY 4.0 기록.
  2. Wien Museum, Beutel (Ridikül), M 9000 — 1830년 무렵, 편물, 금속 고리·리본·태피터 기록.
  3. Wien Museum, Beutel (Ridikül), M 9001 — 1835~40년, 기법 `Nadelarbeit?`라는 불확실성 기록.
  4. Wien Museum, Geldtasche / Geldkatze, M 14700 — 1863년 무렵, 코바늘 비교품.
  5. Austria-Forum, Nadelarbeit — 19세기 비즈 편물 돈주머니의 일반 기법 설명. Beitl의 1974년 사전 인용.
  6. Victoria and Albert Museum, Women’s tie-on pockets — 영국 복식의 주머니와 손가방이 공존한 비교 맥락.

실제 소장품 사진 5장, AI 이미지 0장. 사진 1·2는 한 유물의 양면이며 사진 4·5는 편물로 확정되지 않았거나 코바늘로 분류된 비교품이다. 모든 사진은 해당 Wien Museum 개별 카드에서 CC BY 4.0, 사진가 Birgit und Peter Kainz로 표시되고 파일 자체의 직접 로딩을 확인했다. 사진은 변형하지 않고 표시 크기만 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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