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는 몸의 어디를 감쌀까: 빈 박물관의 망토·조끼·속옷·드레스

자료 조사·작성: 뜨자뜨개 / DDUJA KNIT

겨울 망토와 남성 조끼, 몸에 닿는 속옷, 밖에 입는 드레스. 모두 ‘편물’이라는 한 단어로 묶으면 서로 다른 역할이 잘 보이지 않는다. 빈 박물관의 네 의상은 1870년 무렵부터 1940년까지 약 70년을 가로지른다. 네 점을 당시 빈의 표준 복식으로 부르려는 것이 아니다. 편물 조직을 어디에 놓았는지, 무엇을 덮고 어떻게 여미는지 비교하면 코의 이름보다 옷의 설계가 먼저 보인다.[1]~[4]

네 등록번호, 네 착용 위치

빈 박물관은 약 2만4천 점의 의상 소장품을 보관한다고 설명한다.[5] 따라서 이 글의 네 점은 폭넓은 소장품에서 고른 비교 사례일 뿐 오스트리아 전체 유행의 통계가 아니다. 목록은 네 점 모두 제작자를 미상으로 두고 기법을 ‘knitted (stocking)’이라고 적는다.[1]~[4] 이는 편물이라는 확인 범위이지, 손뜨개인지 기계 편물인지, 몇 코를 잡았는지 알려주는 실행 도안이 아니다. 빈에 있는 박물관의 소장품이라는 사실도 네 점이 모두 빈에서 만들어졌다는 증거는 아니다.

1870년 무렵, 어깨에서 펼쳐지는 울 망토

M 7299는 박물관이 Mantille이라고 부르는 여성용 망토다.[1] 재료는 울, 앞길이 80cm, 등길이 76cm다. 겨울·부르주아지·링슈트라세 시대라는 주제 태그도 붙는다. 사진에서 목 근처의 여밈, 어깨에서 내려오는 넓은 면, 드리운 아래 장식이 보인다. 팔을 따로 감싸는 소매보다 상체에 걸쳐지는 외피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장식의 정확한 제작법이나 원래 착용자의 신분은 이 사진에서 판정하지 않는다. 태그는 소장처의 분류이지, 어느 여성이 어느 거리에서 입었다는 일기가 아니다.

빈 박물관 M 7299 울 망토 전체 사진
사진 1. 울 망토 M 7299, 약 1870년. 원소장처·개별 권리 · 실제 사진 파일. Wien Museum, 촬영자 미표기, CC BY 4.0. 크기만 조정했다.

뜨개를 설계할 때 질문은 ‘무늬를 몇 번 반복했나’보다 ‘목이라는 좁은 경계에서 몸통이라는 넓은 면으로 어떻게 이동하나’다. 그렇다고 이 사진에서 증감 위치를 복원 도안으로 제시할 수는 없다. 안쪽과 뒷면, 접합부가 드러나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보이는 외곽과 보이지 않는 짜임의 경계를 구분해야 오래된 옷을 정확히 읽는다.

1880년 무렵, 앞 여밈에 집중된 실크 조끼

M 4918은 남성 겉옷으로 분류된 실크 조끼다.[2] 앞길이 70cm, 등길이 64cm, 허리둘레 104cm다. 첫 사진에서는 옅은 바탕과 어두운 무늬가 가로 띠를 이루고, 중앙에는 단추가 이어지며, 아래 양옆 끝은 갈라진다. 망토와 달리 이 조끼는 목둘레·진동·앞 여밈·허리라는 경계를 분명히 만든다. 실크라는 재료명이 신축성이나 정확한 두께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빈 박물관 M 4918 실크 조끼 첫 사진
사진 2. M 4918 첫 사진. 원소장처·개별 권리 · 실제 사진 파일. Wien Museum, 촬영자 미표기, CC BY 4.0. 크기만 조정했다.

두 번째 사진은 같은 등록번호의 별도 파일이다. 조끼를 눕혀 다른 비율로 보여 준다. 다른 조끼나 뒷면 사진으로 세지 않는다. 두 사진에서 중앙 단추 열과 아래 윤곽은 더 확실히 보이지만 안감 속 솔기나 코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목록이 목 부근에 있다고 적은 손글씨 ‘I.N. 95.571’도 제작자 서명으로 해석하지 않는다.[2]

같은 실크 조끼 M 4918을 눕혀 찍은 두 번째 사진
사진 3. 같은 M 4918의 두 번째 기록 사진. 원소장처·개별 권리 · 실제 사진 파일. Wien Museum, 촬영자 미표기, CC BY 4.0. 크기만 조정했다.

1892년의 실험과 1930~40년 속옷을 혼동하지 않기

네 의상의 제작자는 미상이다. 하지만 같은 도시에서 편물을 몸 가까이 두려 했던 사람은 다른 자료에 실명으로 남는다. 빈의 의상 제작자이자 사업가 마리아네 벤들은 1892년 10월 7일 ‘Busenschützer’ 특허를 신청했다.[6] 빈 박물관이 소개한 1893년 카탈로그에 따르면 그는 뜬 몸체와 탄성 허리띠를 조합해 기존 코르셋의 조임과 다른 착용 방식을 제안했다. 이것은 벤들의 별도 제품에 관한 기록이다. 아래 M 20227을 그가 만들었다거나 그의 설계를 직접 계승했다고 말할 자료는 없다.

박물관이 1930~1940년으로 분류한 M 20227은 여성 속옷 Body다.[3] 기록의 재료란에는 실크와 면 튤 레이스가 함께 적혀 있고, 기법란에는 편물이 적혀 있다. 앞길이 82cm다. 사진에는 가는 어깨끈, 가슴 부분의 형태, 몸통을 따라 내려오는 긴 면, 아래 가장자리의 장식이 보인다. 두 재료를 하나의 실로 축약하면 서로 다른 부분의 역할을 놓친다. 어느 부분이 정확히 어떤 조직인지 한 장의 사진만으로 전부 구획하지 않는다. 피부 접촉과 지지라는 용도를 의식해 위치와 재료를 나누어 읽는다.

빈 박물관 1930~1940년 속옷 M 20227
사진 4. M 20227, 실크와 면 튤 레이스의 속옷. 원소장처·개별 권리 · 실제 사진 파일. 사진: Birgit und Peter Kainz, Wien Museum, CC BY 4.0. 크기만 조정했다.

1940년, 몸 전체의 윤곽을 정하는 낮 드레스

M 19417은 1940년 여성 낮 드레스다.[4] 박물관은 재료를 합성섬유와 울의 혼합물로, 기법을 편물로 기록한다. 앞길이 123cm, 등길이 118cm, 소매 길이 42cm다. 사진에서는 상체의 깊은 앞쪽 벌어짐, 허리에서 좁아지는 윤곽, 팔꿈치 쪽에서 끝나는 소매, 무릎 아래까지 이어지는 길이가 보인다. 어깨에서 자유롭게 드리우는 망토나 짧은 몸통에 단추를 집중시킨 조끼와 다른 구성이다. 사진만으로 안에 무엇을 입었는지 또는 색 무늬가 어떤 방식으로 편성됐는지는 단정하지 않는다.

빈 박물관 1940년 낮 드레스 M 19417
사진 5. M 19417, 1940년 낮 드레스. 원소장처·개별 권리 · 실제 사진 파일. 사진: Wien Museum, CC BY 4.0. 크기만 조정했다.

다음 도안을 읽을 때 남길 관찰 노트

먼저 목, 팔, 허리, 아래단 중 어디를 감싸는지 표시하자. 망토는 목에서 넓게 펼쳐지고, 조끼는 진동과 앞 여밈이 중요하며, 속옷은 피부에 가까운 긴 면, 드레스는 소매와 무릎 쪽까지 이어지는 전체 윤곽을 갖는다. 그다음 재료를 울·실크·실크와 면 튤 레이스·합성섬유/울 혼합물로 따로 적는다. 네 벌 모두 ‘뜨개’이지만 같은 실이나 같은 착용 조건의 물건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에 물음표를 붙이자. 손뜨개와 기계 편물의 구분, 게이지, 바늘 크기, 솔기 안쪽, 실의 꼬임과 제작 장소는 여기서 확정되지 않는다. 실제 도안을 뜬다면 원본 사진의 외관만 베끼는 대신 자신의 스와치와 치수로 확인해야 한다. 박물관 비교는 완성 도안이 아니라 질문의 순서를 준다. 어디를 감싸는 옷인가,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어떻게 열고 닫는가. 코를 세는 일은 그다음이다.

이 글은 네 개별 등록품과 박물관 맥락 자료에 한정된다. 1870년대 망토가 1940년 드레스로 발전했다는 계보를 만들지 않는다. 벤들의 특허 역시 그 사이에 존재한 별도의 역사적 사례다. 차이를 남겨 둔 채 비교할 때 사진 다섯 장은 편물이 몸과 만나는 여러 장소를 보여 준다.

원문·소장 기록

  1. [1] Wien Museum, M 7299
  2. [2] Wien Museum, M 4918
  3. [3] Wien Museum, M 20227
  4. [4] Wien Museum, M 19417
  5. [5] Modesammlung im Depot
  6. [6] Marianne Bendl und ihr Reform-BH
  7. [7] Die Geschichte des BHs

Read this article in Englis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