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튜더 시대의 모직 모자: 편물, 축융, 1571년 모자법을 구분해 읽기
자료 조사·작성: 뜨자뜨개 / DDUJA KNIT
모자 한 점을 옆에서 보면 둥근 납작한 형태가 먼저 보인다. 위에서 보면 폭넓은 원반처럼 보이고, 뒤집힌 사진에서는 가장자리와 안쪽이 드러난다. 서로 다른 물건 세 점이 아니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번호 29.158.485의 세 방향이다. 이렇게 사진의 수와 물건의 수를 분리하는 데서 16세기 영국 모직 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박물관은 이 유물을 영국 문화권, 16세기, 양모로 기록하고 ‘felted knit caps’라는 맥락을 붙인다. 개인 제작자의 이름은 남기지 않았다. The Met 소장 기록
이 글에서는 소장품 두 점을 사진 다섯 장으로 본다. 다섯 장 가운데 네 장은 29.158.485의 서로 다른 기록 사진이고, 마지막 한 장은 29.158.482라는 별도의 모자다. 두 모자 모두 16세기 영국 모직이라는 공통 항목을 갖지만 같은 공방에서 만들었다는 증거는 없다. 제작 기술에 관해서는 V&A의 편물사 설명과 런던박물관의 다른 실물 모자 조사 결과를 나란히 읽는다. 다른 기관의 모자에서 관찰한 수치나 제작 단계를 The Met의 두 유물에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사진 네 장은 모자 하나를 네 번 기록한다
첫 사진은 29.158.485의 옆면이다. 넓게 퍼진 윗부분과 접힌 듯 보이는 아래 가장자리의 윤곽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전체 실루엣을 읽기 쉽지만 윗부분의 표면은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옆모습만 보고 코줄임의 방향이나 시작 코 수를 단정할 수 없다. 박물관 페이지에서 사진을 넘기면 같은 소장번호 아래 각도가 다른 이미지가 이어진다.
두 번째 사진은 위에서 본 모습이다. 원형에 가까운 윗면의 조직과 가장자리의 위치가 첫 사진과 달리 드러난다. 그러나 오늘날의 베레모와 형태가 비슷하다고 해서 동일한 도안이나 착용 방식을 썼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16세기의 실제 머리 모양과 착용 장면은 사진 밖의 증거가 필요하다.
세 번째 사진은 아래쪽이다. 안쪽 구조를 살필 단서가 늘어나지만 사진의 어두운 부분 하나하나를 봉제 흔적, 수선, 원래의 장식이라고 이름 붙일 근거는 없다. 표면의 관찰과 제작 순서의 복원은 다른 작업이다. 필요한 경우 실물을 가까이 조사한 보존 보고서가 있어야 한다.
네 번째는 같은 물건의 흑백 기록 사진이다. 다른 시기의 촬영 방식으로 윤곽을 비교할 수 있지만 원래 색을 알려 주지 않는다. 현재 갈색으로 보이는 부분이나 흑백 사진의 명암을 16세기 염색의 확증으로 읽지 않는다. 기록 사진도 제작 역사 자체는 아니다.
뜨개로 만든 뒤 다시 다듬는 과정
V&A는 원통을 이음매 없이 뜨는 원형 편물을 설명하며 네다섯 개의 바늘이 모자·양말·장갑에 쓰였다고 한다. 또 16세기 영국 모자를 한 번에 원형으로 뜨는 사례로 설명한다. V&A 손뜨개 역사 런던박물관의 별도 소장품 5011은 이 기술을 더 자세히 보여 준다. 그 기록은 모자와 챙을 원형 메리야스 조직으로 뜬 뒤 축융과 보풀 일으키기·다듬기라는 마감을 했다고 적는다. 축융은 섬유를 치밀하게 만들어 표면을 단단하게 하며, 보풀을 일으킨 뒤 정리하면 뜨개 코가 가려질 수도 있다. London Museum 소장품 5011
하지만 런던박물관이 보고한 ‘15~20단계’, 1인치당 코 수, 챙을 가른 방식은 정확히 그 박물관의 조사 대상에 관한 기록이다. 그것을 The Met 모자 29.158.485나 29.158.482의 측정치라고 쓰면 안 된다. 공통 시대와 재료를 비교해 제작 공정의 가능성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실물이 서로 다르다는 경계는 지켜야 한다. 박물관 사진의 매끈한 표면을 보고 ‘편물이 아니라 펠트로만 만든 모자’라고 하는 것도, 반대로 마감을 빼고 ‘뜨자마자 바로 쓴 모자’라고 하는 것도 부정확하다.
런던박물관은 많은 발굴 모자가 지금 갈색으로 보이는 이유로 오랜 매몰 환경을 설명하고, 옛 색을 확정하려면 염료 분석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모자 5011은 1902년 길드홀박물관 수집품으로 들어왔으나 구체적인 발견 맥락은 남지 않았다고 한다. 단단하게 보존된 표면과 불완전한 발굴 정보가 함께 존재한다. 실물이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 착용자의 이름, 계층, 원래 색이 자동으로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모두 반드시 썼다’보다 중요한 1571년 법의 예외
영국에서 모자 생산이 중요했다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라 법에도 드러난다. V&A는 1571년 Cappers Act의 조항을 소개한다. 잉글랜드에서 여섯 살을 넘은 사람에게 일요일·공휴일의 잉글랜드산 모직 모자 착용을 요구했지만, 여성의 여러 신분과 특정 지위·재산을 가진 사람은 제외하고 여행 중인 경우에도 예외를 두었다. 모자는 잉글랜드에서 뜨고 축융·마감해야 했으며, 마감은 모자 제작업 종사자에게 맡기는 식으로 생산을 규정했다. V&A의 조항 설명
따라서 ‘1571년에 영국인 모두가 매일 똑같은 모자를 썼다’는 문장은 사실을 지나치게 압축한다. 법이 요구한 날, 지역, 대상, 예외와 벌금의 조건이 있었다. The Met의 요약은 예외를 ‘귀족 제외’ 정도로 간단히 적지만, V&A가 소개한 조항은 더 세밀하다. 법의 존재는 제작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보여 주지만, 특정 박물관 모자가 그 법 때문에 만들어졌거나 특정인이 그 규칙에 따라 착용했다는 개별 증거는 아니다.
V&A는 런던 Worship Street의 건축 과정에서 발견된 16세기 모자들을 언급한다. 리본 장식으로 값비싼 실크 모자 느낌을 낸 사례와, 크기로 미루어 소년의 것일 수 있는 유물도 있다. 그러나 그 설명은 V&A가 다루는 발견품에 대한 것이다. 지금 이 글의 The Met 두 점에 똑같은 발견 장소, 장식, 착용자의 나이를 붙일 수는 없다. V&A 유물 설명
두 번째 모자는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
소장번호 29.158.482는 The Met이 영국, 16세기, 양모로 분류한 또 한 점의 모자다. 첫 네 사진과 소장번호가 다르므로 다섯 번째 사진에서야 두 번째 실물이 등장한다. 두 물건 모두 1929년 Bashford Dean Memorial Collection의 기금으로 들어온 기록이 있지만, 1929는 제작 연도가 아니다. 수집 경로의 유사성이 한 제작자의 손이나 같은 착용자의 소유를 증명하지도 않는다. The Met 두 번째 소장품
현대 도안과 유물을 혼동하지 않는 세 가지 질문
첫째, 사진이 몇 장인지보다 소장번호가 몇 개인지 확인한다. 둘째, 편물 구조와 축융·기모 같은 후가공을 나눠 적는다. 셋째, 법의 일반적인 규정과 한 점의 유물에 관한 직접 증거를 구분한다. 이 세 질문만으로도 ‘사진 다섯 장이 곧 모자 다섯 점’이라거나 ‘갈색 모자는 원래 갈색’이라는 식의 잘못된 문장을 피할 수 있다.
오늘 같은 느낌의 모자를 떠 보고 싶다면 현대 실의 게이지와 축융 시험편을 별도로 기록해야 한다. 지금의 실, 세탁 방식, 안전한 염색은 16세기의 조건과 다르다. 이 글의 사진은 역사 유물의 관찰 자료이지 바로 실행할 수 있는 복원 도안이 아니다. V&A의 영국 도안사가 설명하듯 초기 뜨개 기술의 전달은 오늘날의 상세한 인쇄 도안과 달랐다. 모자의 생김새를 아름답게 볼수록 사진·기록·추정을 분리하는 태도가 중요해진다.
원문 자료와 사진 권리
- The Met · cap 29.158.485
- The Met · cap 29.158.482
- V&A · The history of hand-knitting
- V&A · A short history of knitting patterns in Britain
- London Museum · cap 5011
- The Met · Open Access
자료 확인: 2026년 10월 14일. 실제 박물관 사진 5장, AI 이미지 0장. 앞의 네 사진은 동일한 물건의 서로 다른 방향이며 마지막 한 장만 별도의 모자다. The Met의 두 소장품 페이지가 각각 Public Domain으로 표기하고 Open Access 정책을 적용한다. V&A와 London Museum 이미지는 재사용 조건을 확보하지 않아 사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