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뜨개 역사 | 도안을 파는 법을 바꾼 편집자: 키르스텐 호프슈테터와 회네트뤼크
도안을 파는 법을 바꾼 편집자: 키르스텐 호프슈테터와 회네트뤼크

스웨터 앞면에 정치적 기호를 넣는 일은 그 기호를 도안으로 그려 책에 싣고 독자에게 전하는 일과 떨어져 있지 않다. 1973년 덴마크의 키르스텐 알마 호프슈테터는 실 회사가 정한 상표와 설명을 따라야만 하는 뜨개책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그녀의 작업을 ‘화려한 스웨터를 만든 디자이너’라고만 소개하면 책을 제작하고 유통한 사람들, 정확히 그린 도표, 독자가 바꿔 뜰 수 있는 여백이 보이지 않는다. 아르후스의 역사박물관 덴 감레 뷔가 1970년대 옷을 다시 모으고 사람들을 인터뷰한 기록을 펼치면, 뜨개는 바늘 끝뿐 아니라 작은 출판사의 책상 위에서도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2][3]
역사와 배경
호프슈테터의 첫 책 《Hønsestrik》은 1973년 나왔다. 덴마크 국가 백과사전 Lex는 이 책의 원래 제목이 ‘뜨개 선언문’이 될 뻔했고, 다른 출판사와 계획이 맞지 않자 호프슈테터가 직접 회네트뤼크(Hønsetryk)를 만들었다고 적는다. 덴마크 역사 자료에 보존된 책 서문의 요지는 세 가지다. 실 회사가 특정 실 구매를 도안 제공의 조건으로 삼는 관행, 상표를 고정하는 설명, 독자의 상상을 막는 지나치게 경직된 지시를 비판한다. 이것을 ‘도안을 무료로 아무렇게나 복제해도 된다’는 오늘의 저작권 주장으로 바꾸면 안 된다. 당시의 논점은 뜨개인이 실과 색을 고르고 작품에 자기 의견을 넣을 수 있는가였다. [2][3]
작은 출판사의 힘과 약점은 유통에서 드러난다. 덴 감레 뷔 박물관의 직원은 2004년 호프슈테터를 인터뷰했고, 뒤에 당시 책 제작에 참여한 군나르 슈타인을 다시 만났다. 슈타인은 1970년대 회네트뤼크에서 청구서와 발송을 맡았으며, 일반 서점 유통망이 책을 받지 않자 전국의 책 카페로 보내는 다른 길을 썼다고 회고했다. 책의 도안 일부를 깨끗하게 다시 그린 일도 그의 몫이었다. 호프슈테터가 그린 여성기호 속 주먹 도상은 두 번째 책에서 슈타인이 확대·정리했다고 박물관은 전한다. 편물의 ‘자유’는 책을 실제로 읽을 수 있게 하는 편집과 운송 없이는 널리 퍼질 수 없었다. [1]
책의 순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덴마크 공공도서관 목록에는 1973년 첫 권, 1977년 개정판, 2010년 새 판이 구별된다. 덴마크 역사 자료는 1974년과 1980년의 후속 책, 1977년 어린이용 《Kyllingestrik》을 언급한다. 후대 재판이 있다는 사실은 이 표현 방식이 일회성 유행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단서다. 반대로 2010년 책의 도안이 1973년 초판과 모두 같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판본을 구분해야 읽을 수 있는 역사다. [3][4]

인물과 노동
호프슈테터는 1941년 태어나 2007년 세상을 떠난 편물책 저자이자 출판자다. 그녀가 한 일은 독자가 무늬를 고쳐 쓰게 하는 설명을 편집하고, 정치적인 상징도 옷 위에 실을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다. 그것이 당시 모든 덴마크 여성이 같은 뜨개를 했다는 뜻은 아니다. 박물관 전시의 옷 다섯 점은 1970년대 회네스트리크의 폭을 보여 주지만, 촬영 파일은 각 의복의 실제 뜬 사람을 일일이 밝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진 속 옷을 호프슈테터가 직접 만든 ‘친필 작품’으로 적지 않았다. [1][2][5]
1974년 두 번째 책 표지의 결혼사진에는 수사네 베르그만과 군나르 슈타인이 보이고, 호프슈테터는 그 사진의 네 번째 사람이라고 박물관이 확인한다. 여기에는 작지만 중요한 사료 수정이 있다. 호프슈테터는 뒤에 슈타인이 베르그만에게 청혼하며 스커트를 떠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슈타인 본인은 박물관에 스커트를 뜬 것은 맞아도 청혼의 일부는 아니었다고 바로잡았다. ‘매력적인 이야기’와 당사자가 확인한 사실을 구별하는 박물관의 태도는 뜨개 인물을 소개할 때도 필요하다. 작품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붙이는 순간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실제로 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에 기록이 깊어진다. [1]
2026년 덴마크 여성박물관 KØN은 디자이너 한네 림멘의 강연을 통해 이 운동을 다시 다루었다. 박물관은 호프슈테터의 원래 생각을 역사로 놓고, 림멘의 새 책을 현대적인 해석으로 소개한다. 새 도안의 창작자를 1973년 저자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한 세대의 편집자가 만든 ‘고쳐 뜰 권리’라는 물음이 다른 세대의 디자이너에게 전달된 것이다. [6]

작품과 남아 있는 자료
사진 1~5는 위키미디어 공용에 공개된 빌리 핑크 이삭센의 2015년 덴 감레 뷔 전시 촬영물이다. 차례로 긴 채색 의상, 민소매 조끼, 다른 몸판, 양말 한 쌍, 긴팔 상의를 보여 준다. 전시 장면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한 사람의 한 벌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것처럼 처리하지 않았다. 사진 파일의 설명은 ‘덴 감레 뷔의 회네스트리크’라는 제목과 사진가만 명시한다. 옷 각각의 정확한 제작연도·재료·제작자·소장번호는 그 파일만으로 확인할 수 없으므로 적지 않는다. 이 전시의 옷은 호프슈테터 개인 작품의 확정 목록이 아니라 그녀가 책으로 넓힌 표현 문화의 비교 자료다. [1][5]
사진 1의 긴 몸판을 보면 띠가 한 줄의 그림이 아니라 몸을 가로질러 반복되는 설계임을 알 수 있다. 사진 2·3의 민소매 몸판에서는 목둘레와 팔둘레가 무늬띠를 어디서 끊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 양말을 찍은 사진 4는 정치적·기하학적 색무늬가 꼭 스웨터처럼 큰 바탕만 필요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사진 5의 긴팔 옷에서는 소매와 몸판 사이에 무늬가 이어지는지, 각 부분의 반복 단위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할 수 있다. 이 관찰은 사진으로 확인 가능한 형태의 해설이지 실제 코 수나 뜨는 순서를 복원했다는 주장은 아니다. [5]
회네스트리크를 따라 뜨려는 독자에게 필요한 기술적 질문은 별개다. 큰 동물·사람 모티프를 원통형 편물에 배치할 때 몸 둘레의 코 수와 반복 폭이 맞지 않으면 그림이 옆선에서 잘린다. 여러 색을 한 단에서 바꾸면 뒷면의 실 걸침이 늘어나므로 장력과 걸침 길이를 조절해야 한다. 양말처럼 둘레가 좁은 물건에서는 같은 모티프를 축소하거나 반복 간격을 달리해야 한다. 호프슈테터의 책이 선택을 요구했다는 점은 계산을 덜 하라는 말이 아니다. 남의 지정 실을 바꾸어 쓰려면 오히려 게이지와 코 수를 다시 계산해야 한다. [2][3][5]
다섯 사진의 저작자는 빌리 핑크 이삭센이며, 각 파일 페이지에는 CC BY-SA 4.0 허가가 명시된다. 사진 아래에 작가·공용 사이트·라이선스·원본 파일 페이지를 붙였다. 화면용 960픽셀 축소본을 사용하며 원본 작품이나 박물관이 우리 사이트를 후원한다고 암시하지 않는다. [5][7]

시간으로 다시 읽기

다시 읽으며
다음 뜨개책을 펼칠 때 완성 사진만 보지 말고 판권과 도안의 언어를 같이 보자. 실 상표를 꼭 따라야 하는가. 무늬를 바꿨을 때 설명은 길을 열어 주는가. 누가 도표를 그렸고 책을 독자에게 보냈는가. 호프슈테터와 회네트뤼크의 역사는 자유롭게 뜨는 일이 한 사람의 번뜩임이 아니라 정확한 편집, 협업, 유통 위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을 남긴다.
사진을 읽을 때 사진 1~5는 2015년 덴 감레 뷔의 1970년대 회네스트리크 전시를 빌리 핑크 이삭센(Villy Fink Isaksen)이 촬영한 자료다. 각 사진 © Villy Fink Isaksen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사진의 옷별 제작자·제작연도·소장번호는 파일 기록에 없어 추정하지 않는다. 사진은 호프슈테터가 직접 뜬 작품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동시대 스타일을 보여 주는 전시 자료다.
자료와 사진 출처
본문의 번호는 다음 원문 자료를 가리킵니다. 사진의 저작권·이용 조건은 각 사진 아래 원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