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얼굴 둘레를 읽다: 에지워스 데이비드의 남극 편물 발라클라바
자료 조사·작성: 뜨자뜨개 / DDUJA KNIT
모자를 벗으려는데 수염이 함께 당겨진다면, 추위를 막던 옷은 이미 몸과 얼음으로 이어져 있다. 지질학자 태넛 윌리엄 에지워스 데이비드는 1909년 1월 8일 남극 내륙을 이동하며 수염이 방풍 헬멧과 발라클라바에 얼어붙었다고 기록했다. 동료 더글러스 모슨의 뺨과 자신의 코끝도 동상에 걸렸다.[2] 이 문장은 편물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숫자로 재는 증거가 아니다. 얼굴을 둘러싼 옷이 바람과 호흡의 습기를 만나는 자리를 보여 주는 당사자의 기록이다.
호주 국립박물관에는 데이비드가 어니스트 섀클턴의 1907~09년 Nimrod 원정에서 사용한 회갈색 울 편물 발라클라바가 남아 있다. 등록번호는 2024.0001.0224다.[1] 그가 1월 8일 일기에서 말한 발라클라바가 박물관의 바로 그 물건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기록된 유물과 기록된 경험을 같은 원정의 두 증거로 나란히 읽되, 둘을 특정 하루의 동일 물건으로 합치지 않는 것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남극에 간 교수의 모자
시드니대학교 기록보관소는 웨일스에서 태어난 데이비드가 1891년 시드니대 지질학 교수가 됐다고 적는다.[4] 그는 1907년 섀클턴 원정에 합류했고, 매케이와 제자 모슨을 이끌고 남자극을 향한 북부 원정에 나섰다.[1][5] 남자극은 지리적 남극점과 다른 목표다. 섀클턴의 남쪽 썰매대와 데이비드의 북부 원정대를 하나로 섞으면 사진과 일기의 주인도 잘못 읽게 된다. 1909년 책 2권에 실린 데이비드의 원정 기록과 사진은 이 북부 원정의 이동 과정을 보여 준다.[2][3]
퀸즐랜드 해양박물관은 그가 아내에게 남긴 편지와 발라클라바를 함께 원정의 개인 물건으로 소개한다.[5] 다만 해당 전시는 1914~17년 섀클턴의 다른 원정도 다룬다. 이 발라클라바는 박물관 기록에 따라 1907~09년 Nimrod 원정으로만 연결해야 한다. 호주전쟁기념관의 데이비드 인물 기록은 훗날의 군 복무를 확인해 주지만, 그 기록만으로 이 모자의 제작자나 당시의 뜨개 방법을 알 수는 없다.[6]

얼굴 둘레, 목, 두 개의 덮개
국립박물관의 물품 설명은 발라클라바 대부분을 평편물 바탕으로, 얼굴 구멍과 목둘레를 고무단으로, 턱 아래를 앞쪽 덮개와 조금 더 큰 뒤쪽 덮개로 기록한다.[1] 재료는 울이다. 보존 물건의 치수는 높이·너비·깊이 450×245×245mm, 무게는 171.5g이다. 이 수치는 박물관의 유물 측정값이지 바늘 호수·코수·게이지가 적힌 도안이 아니다.
이 설명에서 먼저 살필 경계는 얼굴 구멍이다. 대부분의 바탕과 다른 고무단이 얼굴 둘레에 놓였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몇 코를 주웠는지, 늘림을 어느 단에서 했는지, 가장자리의 탄성이 착용 당시 얼마였는지는 기록에 없다. 목에서도 같은 고무단이 확인된다. 앞뒤의 덮개는 턱 아래로 내려온다고 적혀 있지만, 외투 안에 넣었는지 밖에 걸쳤는지까지 원문은 말하지 않는다. 오늘 도안으로 옮긴다면 얼굴 테두리, 목의 폭 변화, 앞뒤 길이가 다른 덮개의 관계를 먼저 도식화해야 한다. 이 물건의 정확한 복원 도안을 제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수염이 붙은 날, 기록이 말하는 범위
데이비드는 1908년 12월 30일에도 호흡이 얼어 방풍 헬멧이 수염에 달라붙었다고 썼다. 1909년 1월 8일에는 강한 바람 속에서 손이 여러 차례 동상에 걸리고, 수염이 헬멧과 발라클라바에 얼어 벗기 어려웠다고 기록했다.[2] 앞의 날은 헬멧, 뒤의 날은 헬멧과 발라클라바를 함께 언급한다. 두 문장을 합쳐 같은 모자에서 매일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얼굴 둘레에 밀착하는 옷을 읽을 때 온기뿐 아니라 습기, 결빙, 벗는 동작까지 질문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진다.
발라클라바의 고무단과 덮개가 동상을 막는 데 성공했다거나 실패했다고 평가할 근거도 없다. 당사자는 피부 손상과 옷에 붙은 수염을 기록했지만, 특정 편물 구조와 결과를 비교한 실험을 남기지 않았다. 이 차이를 지키면 물건의 형상을 이해하면서도 기능을 과장하지 않을 수 있다.


다음 발라클라바 도안을 펼칠 때
박물관 소장품은 이름이 확인되는 사용자의 울 편물 방한구다. 다섯 역사 사진은 그가 속했던 북부 원정의 환경을 보여 주지만 유물의 다섯 시점이 아니다. 실물의 세 사진은 국립박물관 소장품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는 그 파일들의 개별 재사용 허가가 확인되지 않아 직접 싣지 않았다. 역사 사진에서 데이비드의 머리나 목에 보이는 부분을 등록번호 2024.0001.0224로 식별하지도 않는다.
다음에 발라클라바 도안을 읽을 때는 완성 사진보다 먼저 세 선을 그려 보자. 얼굴 구멍을 따라 도는 테두리는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가. 목의 둘레는 얼굴 둘레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앞뒤 덮개는 같은 길이인가. 이 유물의 설명은 그 질문을 던질 만큼 구체적이지만 코수·게이지·착용법까지 답하지는 않는다. 남겨진 기록의 빈칸을 인정할 때, 한 장의 도안도 더 정확하게 읽힌다.
자료
- National Museum of Australia, balaclava 2024.0001.0224 — 사용자·시기·형상·재료·치수.
- T. W. Edgeworth David의 1909년 북부 원정 기록 — 1908년 12월 30일과 1909년 1월 8일 일기. 원서 2권.
- BHL 원서 서지·권리 — 1909년 출판과 퍼블릭 도메인.
- University of Sydney Archives — 출생·교수 경력.
- Queensland Maritime Museum — 발라클라바와 편지의 전시 맥락.
- Australian War Memorial — 훗날 군 복무의 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