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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는 어떻게 뜨이는가: 선원의 속옷에서 프랑스 편물 공장까지

시대 1810년대 선원 복식의 그림 기록부터 19세기 방적·20세기 공장·현대 제작까지
인물 레옹 르갈레, 발터 후바허, 쥘리앵 봉트, 쥘리에트 코를레, 솔랑주
주요 유물 촘촘한 양모 샹다유 마랭과 기계로 뜬 면 저지 마리니에르

2012년에 촬영된 프랑스 해군형 줄무늬 상의
사진 1. 2012년에 촬영된 프랑스 해군형 줄무늬 상의 · © Claude Truong-Ngoc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흰 바탕에 남색 줄이 오가는 마리니에르를 보면 ‘프랑스 바다’가 떠오른다. 하지만 손뜨개 도안을 펴기 전에 한 가지를 물어야 한다. 그 줄무늬는 손으로 코를 바꿔 뜬 스웨터의 무늬인가, 기계가 만든 면 저지를 재단해 꿰맨 셔츠의 무늬인가. 생마스의 두꺼운 양모 선원 스웨터와 르 미노르의 가벼운 줄무늬 셔츠는 같은 해양 이미지를 공유하지만 재료·기계·봉제 공정이 다르다. 이 차이를 따라가면 한 나라의 ‘전통’이라는 말 뒤에 숨은 노동이 보인다. [1][2][3]

사진은 1858년형 해군 셔츠와 1910년 무렵 선원, 2012년 촬영된 해군 마리니에르, 현대 상업용 스웨터의 확대, 트루아의 편물 기계다. 어느 한 장도 생마스나 르 미노르의 생산 현장이라고 확인되지 않는다. 사진의 시대·소재·제작 지역을 회사 연혁과 섞지 않고 읽는다. [7][8][9][10][11]

역사와 배경

프랑스 국립해양박물관의 교육 자료는 오늘 마리니에르라 부르는 줄무늬 상의의 선행 형태를 선원의 ‘트리코 라이예(tricot rayé)’라고 설명한다. 1810년 무렵 어민을 그린 이미지에서 찾을 수 있고, 처음에는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오는 몸에 붙는 속옷으로 입었으며 바깥에는 바람을 막는 웃옷을 덧입었다고 한다. 박물관은 줄무늬의 이유를 한 가지로 단정하지 않는다. 사회적 신분 표시, 멀리서 식별하기 쉬운 성질 등 여러 설명을 제시한다. 따라서 ‘물에 빠진 선원을 찾기 위해 21줄로 정했다’는 널리 퍼진 이야기를 유일한 기원으로 옮겨 적지 않는다. [1]

해군의 줄무늬 속옷이 오늘의 모든 선원 스웨터와 같은 옷도 아니다. 노르망디 생마스 지역의 제조사 생마스는 레옹 르갈레가 1850년 무렵 방적 공장을 세워 지역 양모를 실로 만들어 잡화상과 편물상에 공급했다고 설명한다. 1889년 회사가 정식 방적 회사가 되며 첫 양모 선원 상의를 생산했다. 굵은 모직을 조밀하게 뜨는 목적은 습기와 바람을 맞는 어민에게 보온성과 움직임을 함께 주는 것이었다. 회사가 설명하는 이름 ‘샹다유’의 마늘 장수 일화는 그 회사가 전하는 어원 이야기로 표기하고, 이를 문헌으로 확정된 프랑스어 어원이라고 확대하지 않는다. [2]

20세기에 해양 의복은 작업복만으로 남지 않았다. 생마스는 1950년대 쥘리앵 봉트가 회사를 인수해 선원 스웨터 생산을 중심으로 재편했고, 1970년대에는 계절 상품을 넓혔다고 기록한다. 브르타뉴 쾽페르에서는 스위스 출신 섬유 기술자 발터 후바허가 1938년 ‘보네트리 다르모르’를 세웠다. 오늘의 아르모르뤽스는 속옷에서 시작해 기성복과 해양 복식으로 영역을 넓혔다고 회사 연혁에 적는다. 두 기업 모두 마리니에르를 말하지만 각각 19세기 양모 방적과 20세기 편물 산업이라는 다른 출발점을 가진다. 한 브랜드의 연혁을 프랑스 전체의 뜨개 기원으로 삼을 수는 없다. [2][4]

브르타뉴 르 미노르의 연혁은 또 다른 경로를 보인다. 회사는 1922년부터 지역의 편물·의복 기술을 잇고, 1963년 쥘리에트 코를레의 지휘 아래 현재의 기델 공장에 자리 잡아 선원 스웨터와 면 마리니에르를 일반 고객에게 만들기 시작했다고 적는다. 1980년대에는 프랑스 해군용 스웨터를 생산했고, 이후 일본 수출과 고급 브랜드 생산도 경험했다. 그러므로 오늘의 줄무늬 셔츠를 낭만적인 ‘어부의 손뜨개’라고만 부르면 방적, 편기 조정, 저지 안정화, 재단, 봉제라는 산업의 긴 사슬이 지워진다. [3][5]

1910년 무렵 줄무늬 상의를 입은 프랑스 선원 초상
사진 2. 1910년 무렵 줄무늬 상의를 입은 프랑스 선원 초상 · 작자 미상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인물과 노동

레옹 르갈레는 생마스의 실을 팔던 방적 사업에서 선원용 완제품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연 사람으로 회사 기록에 등장한다. 1950년대의 쥘리앵 봉트는 실 판매보다 스웨터 생산에 무게를 두었다. 발터 후바허는 1938년 쾽페르에 아르모르 편물 회사를 세운 기술자다. 세 인물은 복식의 전설 속 선원이 아니라 실과 편물의 공급 구조를 만든 사람들이다. 회사사이므로 그 업적은 각각의 기업에 한정해 읽는다. [2][4]

기술의 다른 얼굴은 르 미노르의 제작 설명에 있다. 그 설명은 면 저지를 일정하게 만드는 기계, 줄이 맞게 패널을 자르는 사람, 겉으로 보이지 않는 밑면의 줄까지 맞추며 봉제하는 사람을 차례로 보여 준다. 르 미노르는 품질 검사와 다림질을 맡는 직원 솔랑주가 46년 일했다고 이름을 적는다. 얼굴이 널리 알려진 디자이너의 사진보다 한 작업자의 이름이 중요한 이유는, 품질이 한 번의 디자인 제스처가 아니라 검사와 수정의 반복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사진과 설명으로 확인되지 않는 작업자의 생애는 추측하지 않는다. [5]

르 미노르의 이전 시대에는 쥘리에트 코를레가 1963년 공장 이전과 일반 소비자용 마리니에르 생산을 이끌었다. 이름을 기록할 때 ‘프랑스 마리니에르의 발명가’라고 부를 근거는 없다. 대신 지역 공장이 해군·어민 대상 편물에서 일상 패션으로 옮겨 가는 전환에 관여한 인물이라고 적는다. 같은 명칭의 옷이라도 착용자와 시장, 만든 방식이 시대마다 바뀌었다. [3]

트루아 보니트리 박물관의 편물 기계
사진 3. 트루아 보니트리 박물관의 편물 기계 · © G.Garita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작품과 남아 있는 자료

생마스 양모 샹다유를 볼 때는 먼저 조직의 촘촘함을 확인하자. 회사 자료는 지역 양모의 조밀한 편물을 강조하며, 어깨 단추가 목의 좁은 통과를 돕는 설계라고 설명한다. 손뜨기로 비슷한 옷을 만들 때는 사진에서 줄 수만 세기보다 스와치의 밀도와 목둘레의 신축성, 어깨 여밈의 위치를 먼저 시험해야 한다. 그러나 회사 제품의 정확한 코 수와 편기 사양은 공개된 소개문만으로 알 수 없으므로 임의의 완성 도안처럼 제시할 수 없다. [2][6]

르 미노르 마리니에르는 면 실에서 시작한다. 제작사는 보주 지방에서 방적한 면 실을 기델에서 원형 편기로 저지로 뜬 뒤, 길게 생산된 편물을 안정화하고 손으로 재단해 봉제한다고 설명한다. 산업 편기의 밀도와 손뜨개 도안의 10cm당 코·단 수는 서로 다른 지표다. 회사의 공정 설명에서 특정 제품의 기계 설정값을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숫자를 임의로 제시하지 않는다. 손뜨개 도안으로 옮길 때는 반드시 시편을 떠서 실제 밀도를 재야 한다. [5]

마리니에르의 줄은 재단 뒤 인쇄한 것이 아니라 저지를 뜨는 동안 생긴다. 그러나 옷의 옆선에서 줄이 이어지려면 재단 높이와 봉제 때의 탄성을 다시 다뤄야 한다. 르 미노르는 원형 편기로 생기는 말림을 줄이기 위한 안정화가 협력 공장 로안에서 이루어진다고 공개한다. ‘프랑스에서 만든다’는 한 문장 안에도 지역 간 분업이 있다. 아래 사진 3의 트루아 박물관 편물 기계는 이런 산업 기술의 비교 자료이지만, 르 미노르가 사용한 바로 그 기계라는 근거는 없다. [5][9]

줄무늬 셔츠와 해군 스웨터를 모두 ‘해양 니트’라고 묶을 수는 있지만 도안 독자는 구조를 나누어 읽어야 한다. 면 저지의 줄과 양모 스웨터의 조밀한 편물은 재료와 생산 공정이 다르다. 프랑스의 사례에서는 특히 손뜨개의 한 코와 편물 공장의 수천 미터 저지가 같은 원리의 고리 구조를 공유하면서도 설계·생산 규모가 달라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도안이나 완제품을 볼 때 실의 재료, 뜨는 방식, 재단과 봉제 유무를 차례로 확인해 보자. [1][2][5]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1858년형 규정 셔츠는 약 1880년 물건으로 기록되고 재료는 아마포로 분류된다. 따라서 사진 5를 보고 모든 줄무늬 해군 상의가 양모 손뜨개나 면 저지였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옷이라도 원료·제작법이 달라질 수 있음을 드러내는 중요한 반례다. 사진 2의 1910년 무렵 선원 초상은 당시 착용 모습을 보여 주지만, 촬영 장소와 제작사, 옷의 정확한 조직은 파일 설명에 없다. 사진 4의 현대 스웨터는 프랑스 공장 제품으로 식별되지 않으므로 표면 무늬의 비교에만 사용한다. [1][7][8][10][11]

2016년 촬영한 현대 줄무늬 스웨터의 표면 확대
사진 4. 2016년 촬영한 현대 줄무늬 스웨터의 표면 확대 · DimiTalen / Wikimedia Commons · CC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시간으로 다시 읽기

  1. 1810년 무렵 · 프랑스 어민의 줄무늬 속옷이 그림 자료에 나타난다. [1]
  2. 1850 · 레옹 르갈레가 생마스에서 양모 방적 공장을 세웠다. [2]
  3. 1889 · 생마스가 첫 양모 선원 상의를 만들었다. [2]
  4. 1938 · 발터 후바허가 쾽페르에 보네트리 다르모르를 세웠다. [4]
  5. 1963 · 르 미노르가 기델 공장으로 옮겨 일반 고객용 선원 니트와 줄무늬 셔츠를 키웠다. [3]
프랑스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1858년형 아마포 선원 셔츠
사진 5. 프랑스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1858년형 아마포 선원 셔츠 · © Rama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FR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다시 읽으며

마리니에르는 한 장의 줄무늬 이미지가 아니다. 선원의 몸에 닿던 속옷, 어민의 두꺼운 양모 스웨터, 편기로 뜬 면 저지가 서로 다른 시대에 같은 바다의 언어로 불렸다. 레옹 르갈레와 발터 후바허 같은 사업가의 이름뿐 아니라 공장에서 편기를 조정하고 줄을 맞추고 검사한 사람의 일까지 보일 때, 프랑스의 해양 뜨개는 비로소 옷의 역사로 읽힌다.

사진을 읽을 때 사진 1은 2012년에 촬영한 프랑스 해군형 줄무늬 상의, 사진 2는 1910년 무렵 프랑스 선원의 저해상도 초상, 사진 3은 트루아 보니트리 박물관의 편물 기계, 사진 4는 2016년 촬영한 현대 상업용 줄무늬 스웨터 확대, 사진 5는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1858년형 아마포 선원 셔츠다. 회사가 직접 생산한 르 미노르·생마스 제품이나 현장 사진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자료와 사진 출처

본문의 번호는 다음 원문 자료를 가리킵니다. 사진의 저작권·이용 조건은 각 사진 아래 원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자료 1 · www.musee-marine.fr
  2. 자료 2 · fr.saint-james.com
  3. 자료 3 · leminor.fr
  4. 자료 4 · www.armorlux.com
  5. 자료 5 · leminor.fr
  6. 자료 6 · fr.saint-james.com
  7. 자료 7 · commons.wikimedia.org
  8. 자료 8 · commons.wikimedia.org
  9. 자료 9 · commons.wikimedia.org
  10. 자료 10 · commons.wikimedia.org
  11. 자료 11 · commons.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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