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 하루요: 뜨는 손을 읽을 수 있는 기호로 옮기다
DDUJA KNIT JOURNAL · 일본 · 인물과 교육
자료 조사·작성: 뜨자뜨개
1927년 11월의 여성 잡지를 펼친다고 상상해 보자. 부엌과 건강, 가족생활을 다룬 글 사이에 아동용 겨울옷을 뜨는 법이 들어 있다. 한 달의 유행을 소개하는 지면이면서, 동시에 독자가 바늘을 들고 같은 옷을 재현할 수 있도록 지시하는 교실이었다. 그 목차에는 에토 하루요의 이름이 두 번 나타난다. 오늘은 그 두 줄에서 출발해, 한 강사가 어떻게 ‘뜨는 손’을 ‘읽을 수 있는 기호’로 옮겼는지 살핀다. [1]
01 · History & Culture
코의 움직임을 종이 위의 언어로
- 시대
- 1879~1960년 · 메이지·다이쇼·쇼와기의 뜨개 교육
- 주요 인물
- 에토 하루요(江藤春代), 그의 도안을 실은 잡지의 편집자와 독자
- 대표 작품
- 합리적 부호, 아동용 겨울옷·오버코트·모자 도안
역사의 결
에토 하루요를 연구한 기타가와 케이의 2020년 논문은 그를 1924년 뜨개 동작을 표현하는 ‘합리적 부호’를 고안한 강사로 소개한다. 이 표현을 현재의 모든 도안 기호를 한 사람이 혼자 발명했다는 뜻으로 읽으면 안 된다. 그 이전에도 뜨개책과 설명 방식은 존재했고, 출판사와 교사가 각자 독자에게 기술을 전달했다. 에토의 중요한 몫은 복잡한 손동작을 반복해서 가르칠 수 있는 표기로 정리한 데 있다. [2][3]
1920년대의 잡지는 이 작업이 왜 필요했는지 보여준다. 쇼와관 디지털 아카이브가 보존한 《주부의 벗》 1927년 11월호는 ‘모사 뜨개 전람회호’라는 부제를 달고, 다음 해형 모사 뜨개 25종을 목차에 올렸다. 그 가운데 에토 이름으로 된 항목은 여섯·일곱 살 남아의 겨울옷과 열두·열세 살 여아의 오버코트·모자다. 잡지의 목록은 원고의 존재와 작품의 대상을 증명하지만, 여기서 전체 도안의 실제 기호와 편물 구조까지 확인한 것은 아니다. 사진이나 도안을 보지 않고 코 수와 제작법을 재구성하지 않겠다. [1]
20세기 전반 손뜨개책을 검토한 모리 리에와 사쿠라이 아유미의 연구는 소품·속옷에서 다양한 의류로 다루는 품목이 확대되고, 1920년대에 도구와 실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고 보고한다. 이는 출판물 연구이며 전국의 실제 제작량 조사와는 다르다. 그 한계를 지키면서 보면, 아동용 외투와 모자가 잡지의 큰 지면에 실린 1927년의 장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과 잡지는 ‘뜨개는 교양인가, 가족의 필요를 채우는 노동인가’라는 질문을 동시에 품었다. [3]
기타가와는 에토의 삶을 전쟁과 재난, 가족의 수입이 흔들리던 시대의 여성사 속에 놓는다. 배운 기술은 자신이나 가족이 입는 옷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했고, 부업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모든 독자가 같은 사정이었으리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표준화된 설명이 널리 퍼질수록 집 밖의 교실에 갈 수 없는 사람도 같은 기술에 접근할 가능성이 커졌다. 도안의 기호는 미학만이 아니라 거리와 시간의 문제를 푸는 도구였다. [2]
사람의 손
대학교의 공개 강연 기록은 에토가 1879년에 태어나 1960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적는다. 같은 기록은 연구자가 오래된 책과 도구, 재현 작품을 가지고 그의 활동을 소개했다고 전한다. 연구 논문은 그의 삶을 메이지·다이쇼·쇼와의 정치적·경제적 변화와 함께 읽는다. 개인의 재능만 강조하면 그가 가르친 수많은 여성의 필요가 배경으로 밀려난다. 반대로 시대만 이야기하면 도안 언어를 정리한 한 사람의 선택이 보이지 않는다. 인물 기사는 이 둘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2][4]
국립정보학연구소의 CiNii 도서 기록에는 그를 주제로 한 연구서의 목차가 보인다. 후쿠오카에서의 연구, 남편의 죽음 뒤 레이스 연구, 편물 교육과 보급 같은 주제가 따로 놓여 있다. 이는 생애의 사건을 검토할 길잡이지만, 목차만으로 각 사건의 상세한 경위까지 알 수는 없다. 문화청에 재현된 국립국회도서관의 1925년 저서 서지를 함께 보면, 에토의 이름이 강연장뿐 아니라 책과 잡지의 저자명으로도 남았다는 점은 분명해진다. [5][3][6]
특히 1927년 잡지 목차의 두 작품은 그를 추상적인 ‘기호 발명가’로 두지 않는다. 한 편은 겨울의 여섯·일곱 살 아이를, 다른 편은 학교에 다닐 나이의 아이가 입을 외투와 모자를 대상으로 한다. 바늘을 잡은 독자는 코의 움직임과 함께 아이의 나이, 계절, 옷의 용도를 생각해야 했다. 강사는 그 복합적인 판단을 지면 너머의 독자에게 전달해야 했다. 이름이 남은 에토와 이름이 남지 않은 실제 제작자 사이의 거리가 바로 당시 뜨개 교육의 현장이다. [1]
02 · Objects & Reading Notes
옛 도안을 읽을 때 확인할 것
옛 도안을 읽을 때 첫 순서는 오늘의 기호 범례를 자동으로 대입하지 않는 것이다. ‘합리적 부호’라는 이름은 설명을 체계화하려는 의도를 말해 주지만, 현재 쓰는 표준 기호와 모양·뜻이 모두 같다는 증거는 아니다. 책의 발행 연도, 판본, 실과 바늘의 단위, 시작·끝의 표시를 먼저 살핀다. 모호한 기호는 주변 문장과 완성 사진, 같은 책의 다른 도안과 대조해야 한다. 이 과정 없이 현대 도안으로 다시 그리면 에토의 설명법을 이해했다기보다 새 도안을 만든 셈이 된다. [2][3]
아동용 외투에서는 몸에 맞는 여유분이 관건이다. 목차의 ‘여섯·일곱 살’은 곧 치수표가 아니다. 실제 도안의 가슴둘레와 길이, 당시의 실 굵기를 확인하지 않고 오늘의 아동 옷 크기로 옮기면 맞지 않을 수 있다. 모자라면 둘레와 신축성, 겨울옷이라면 여밈과 세탁 후 길이까지 살펴야 한다. 뜨개책을 역사 자료로 읽을 때는 ‘무엇을 만들 수 있다’와 ‘오늘 그대로 재현해도 된다’를 구별하는 일이 중요하다. [1]
잡지 목차는 또한 한 사람의 창작만이 아니라 다수 필자의 공동 지면을 보여 준다. 같은 25종 목록에 아기 케이프, 아이 옷, 스포츠 스웨터, 남성 조끼가 함께 있다. 여러 필자의 작품을 한 계절의 ‘새로운 모사 뜨개’로 배열하는 일은 편집의 작업이다. 패턴 디자이너의 이름, 잡지 발행사의 선택, 독자의 실제 재현이 겹칠 때 하나의 스타일이 널리 퍼진다. 지금 온라인 무료 도안에서도 디자이너·편집자·촬영자·독자를 분리해서 보는 눈이 필요한 까닭이다. [1]
사진의 도구는 모두 현대의 비교 자료다. 촬영 장소가 일본이거나 에토가 소유한 물건이라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은 잡지 목차·연구 논문·도서관 서지에서 확인하고, 사진으로는 동작과 규격을 설명할 때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다음 도안을 펼칠 때
에토 하루요의 이야기는 1924년의 기호 한 가지로 끝나지 않는다. 교실에서 손으로 보여 준 동작이 책의 부호가 되고, 잡지의 아동복 도안이 되어, 먼 곳의 독자에게 건너가는 과정이 남아 있다. 그 길에는 기호를 만든 강사뿐 아니라 원고를 실은 편집자와 몸에 맞게 다시 뜬 사람이 있다. 오래된 도안 한 장을 발견한다면, 기호의 모양뿐 아니라 누가 그 설명을 필요로 했는지까지 읽어 보자. 그 질문에 답할 때 표기는 비로소 한 시대의 생활을 들려준다.
원본 자료
- 쇼와관 디지털 아카이브, 《주부의 벗》 제11권 제11호(1927년 11월) 목차
- 기타가와 케이, 「메이지기~쇼와기에 활약한 에토 하루요의 편물 보급 활동과 일본의 편물 변천」, 《일본가정학회지》 71권 12호(2020), 783–799쪽
- 모리 리에·사쿠라이 아유미, 「근대 일본의 편물 변화 한 측면」, 《일본가정학회지》 63권 5호(2012)
- 아이코쿠 학원 단기대학, 에토 하루요 공개 강연 기록(1879–1960)
- CiNii Books, 《에토 하루요의 편물 보급 활동: 일본 편물의 변천》(2021) 서지·목차
- 일본 문화청, 국립국회도서관 서지 재현: 에토 하루요 《編物の研究》(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