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소장 스타킹 5점으로 읽는 네 세기: 수선, 보온, 궁정복과 비단

스타킹 한 짝은 의외로 솔직한 역사 자료다. 해진 발끝의 수선은 어디가 먼저 닳았는지 보여주고, 안감은 보온을 위해 어떤 재료를 더했는지 알려준다. 이름의 머리글자가 남아 있으면 누군가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이 글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의 17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소장품 다섯 점을 따라간다. 다섯 점을 네덜란드 전체 뜨개 역사의 대표 표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각 기록이 실제로 증명하는 제작법, 착용의 흔적, 의복의 맥락과 기록이 답하지 못하는 질문을 함께 읽는다.

1. 수선된 갈색 양모 무릎 스타킹

NG-2006-110-18-A는 약 1650~1700년의 연갈색 무릎 스타킹이다. 소장품 기록은 고무단의 안뜨기와 고무단에서 뒤꿈치로 이어지는 장식선을 묘사한다. 원래의 편물은 원통으로 떴다고 기록되며, 여러 차례의 짜깁기와 나중에 꿰맨 패치도 남았다. 세 행위는 구분해야 한다. 뜨개는 처음의 천을 만들고, 짜깁기는 닳은 구멍에 실을 더하며, 직물 패치는 별도의 천 조각을 꿰맨 것이다. 모두를 그냥 ‘뜨개 기법’으로 합치면 옷의 사용 역사가 사라진다. 박물관의 분류에는 스발바르 포경 관련 출토 맥락이 연결되지만, 그 사실만으로 이 스타킹이 현재의 네덜란드에서 제작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제작자와 착용자의 이름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 물건이 분명히 전하는 것은 버리지 않고 계속 고쳐 쓴 자국이다.

1650~1700년경 수선 흔적이 있는 갈색 양모 무릎 스타킹
사진 1. Rijksmuseum, NG-2006-110-18-A, 1650~1700년경 양모 무릎 스타킹. 소장품 원문 · 사진 파일. 재사용 조건: 소장품 기록의 퍼블릭 도메인 표시.

2. 면 바깥면과 방적하지 않은 양모 안감

약 1780년으로 분류된 BK-NM-13159-A-1은 크림색 면 스타킹에 방적하지 않은 양모를 안감으로 댄 물건이다. 기록에는 뒷솔기와 ‘YV’로 읽힐 가능성이 있는 머리글자도 나온다. 이 판독에는 물음표가 따르므로 어떤 실명으로 확정해서는 안 된다. 이 스타킹의 핵심은 눈에 보이는 면과 안쪽 양모가 다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부드러운 양모는 다리에 닿는 보온층으로 작용했을 수 있고, 면은 외관과 촉감을 달리했을 것이다. 이는 재료의 조합을 읽은 해석이지 착용자의 직업, 지역 기후, 정확한 제작 의도를 확인했다는 뜻이 아니다. 현대의 ‘보온 양말’ 도안으로 곧바로 바꾸어 부르기보다 뒷솔기와 안감이 두께·핏을 어떻게 달리했을지 묻는 편이 유익하다.

1780년경 방적하지 않은 양모 안감이 있는 크림색 면 스타킹
사진 2. Rijksmuseum, BK-NM-13159-A-1, 1780년경 면·양모 스타킹. 소장품 원문 · 사진 파일. 재사용 조건: 소장품 기록의 퍼블릭 도메인 표시.

3. 궁정복의 머리글자는 편물 제작자의 서명이 아니다

BK-NM-12310-C-2는 약 1806~1810년의 비단 스타킹 한 쌍으로, 뜨개와 자수가 함께 기록된다. 자수된 머리글자는 코르넬리아 스테인흐라흐트 판 오스트카펠레-판 넬레스테인(Cornelia Steengracht van Oostkapelle-van Nellesteijn)과 연결된다. 박물관은 그녀가 루이 나폴레옹의 궁정 접견 때 관련 의복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확인된 행사 사진이나 착용 일지를 가진 것처럼 단정할 수 없다. 머리글자는 특정 착용자를 생각하게 하지만 편물과 자수를 만든 익명의 사람을 밝혀주지는 않는다. 비단 표면의 코와 그 위에 놓인 장식 글자를 서로 다른 제작 층으로 읽어야 한다. 자수의 형태를 뜨개 코만으로 만들어졌다고 오인하지 않는 것도 도안을 보는 중요한 감각이다.

1806~1810년경 머리글자 자수가 놓인 비단 스타킹
사진 3. Rijksmuseum, BK-NM-12310-C-2, 1806~1810년경 뜨개·자수 비단 스타킹. 소장품 원문 · 사진 파일. 재사용 조건: 소장품 기록의 퍼블릭 도메인 표시.

4. 발끝을 기운 흰 비단 궁정 스타킹

BK-14982-G-1은 약 1815~1830년의 흰 비단 스타킹이다. 박물관은 별도 고무단 없이 입체감 있는 코로 짰다고 설명하며, 발끝의 짜깁기 흔적을 적었다. ‘아마 남성의 궁정복’이라는 분류에도 추정의 여지를 남긴다. 정장용 의복도 수선하여 사용했다는 점에서 첫 번째 양모 스타킹과 대화한다. 기록된 치수는 길이 71cm, 너비 14cm와 또 다른 길이 23cm다. 측정 위치를 보여주는 그림이 없으므로 뒤의 23cm를 특정 부위의 길이라고 임의로 확정하지 않는다. 제작 항목은 뜨개 노동자를 익명으로 표기하고 제작지를 네덜란드 ‘가능성 있음’으로 적는다. 따라서 네덜란드 소장품과 궁정복 맥락을 말할 수는 있지만, 실명이 확인된 네덜란드 장인의 작품이라고 소개할 근거는 없다.

1815~1830년경 발끝 수선 흔적이 있는 흰 비단 궁정 스타킹
사진 4. Rijksmuseum, BK-14982-G-1, 1815~1830년경 입체 코의 흰 비단 스타킹. 소장품 원문 · 사진 파일. 재사용 조건: 소장품 기록의 퍼블릭 도메인 표시.

5. 검은 비단 트리코가 말해주지 않는 것

약 1915~1935년으로 폭넓게 분류된 BK-1973-526-A-2는 검은 비단 스타킹이다. 박물관은 좁은 세로선과 작은 물결 모양이 있는 넓은 상단을 적고, 제작 기법을 뜨개로 분류한다. 네덜란드어 설명의 ‘트리코(tricot)’는 편성된 천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이 소장품 설명과 사진만으로 손뜨개인지 기계편물인지 판정할 수 없다. 사진은 표면과 윤곽을 보여주지만 생산 장부는 아니다.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의 손뜨개 역사와 편물 속옷 연구는 손작업과 스타킹 틀, 이후 기계 생산을 이해하는 배경을 제공한다. 그 일반 역사를 이 특정 스타킹의 제작법 증거로 대신해서는 안 된다.

1915~1935년경 세로선과 물결 모양 상단이 있는 검은 비단 스타킹
사진 5. Rijksmuseum, BK-1973-526-A-2, 1915~1935년경 검은 비단 편물 스타킹. 소장품 원문 · 사진 파일. 재사용 조건: 소장품 기록의 퍼블릭 도메인 표시.

다음 스타킹 도안에서 살펴볼 것

이 다섯 점은 기술이 직선으로 발전했다는 연대표가 아니다. 가장 오래된 점에는 여러 수선이 있고, 1780년경 물건에는 면과 양모가 겹치며, 궁정복 관련 비단 두 점에서는 착용자·편직자·자수자를 구별해야 한다. 20세기 물건은 오히려 생산 방법이 미상이라는 질문을 남긴다. 다음 도안을 펼칠 때 몸통의 코가 무엇인지, 뒷솔기가 구조인지 장식인지, 뒤꿈치·발끝을 나중에 고칠 수 있는지, 안감이 핏을 얼마나 바꾸는지 살펴보자. 박물관이 ‘가능성 있음’이나 ‘추정’이라고 적은 부분을 그대로 남기는 것이, 사물과 사람의 역사를 과장하지 않고 읽는 출발점이다.

원문 자료

  1. Rijksmuseum NG-2006-110-18-A
  2. Rijksmuseum BK-NM-13159-A-1
  3. Rijksmuseum BK-NM-12310-C-2
  4. Rijksmuseum BK-14982-G-1
  5. Rijksmuseum BK-1973-526-A-2
  6. V&A 손뜨개 역사, 편물 속옷 — 다섯 소장품의 제작법을 증명하는 자료가 아닌 일반 시대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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