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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서 돌아온 다섯 모자: 네덜란드 포경선원의 편물을 읽다

시대 17~18세기 북극 포경업 · 1979~1981년 발굴 · 국립박물관의 소장품 기록
인물 이름을 확인할 수 없는 모자 제작자와 착용자, 그로닝언대 북극연구센터의 발굴 연구자, 직물 고고학자 산드라 요란다 코미스
주요 유물 네덜란드 국립박물관 소장 양모 모자 NG-2006-110-8·6·3·4·12

다색 가로줄 바깥 모자와 연갈색 안감이 있는 네덜란드 포경선원 양모 모자
사진 1. 다색 가로줄 바깥 모자와 연갈색 안감이 있는 네덜란드 포경선원 양모 모자 · Rijksmuseum, Amsterdam · NG-2006-110-8 · 공공 영역 표시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서로 비슷한 모자를 쓴 사람들 사이에서 동료를 알아보려면 무엇을 볼까.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의 북극 포경선원 모자 설명은 눈만 보일 만큼 몸을 싸맨 남자들이 줄무늬와 색으로 서로를 식별했을 것이라고 전한다. 그 가설이 마음을 끄는 이유는 무늬가 갑자기 한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자가 발견된 장소는 작업실이 아니라 스발바르드의 무덤이었고, 이름을 읽을 수 있는 상표도 없다. 모자 다섯 점을 박물관 번호별로 보면 같은 ‘선원 모자’ 안에서도 두 겹 구조, 귀덮개, 접힌 테두리, 수선 자국, 편물과 봉제의 결합이 다르다. 이 글은 북극의 추위를 낭만화하지 않고 발굴된 옷이 알려 주는 노동과 기술의 범위를 묻는다. [1][2][3][4][5][6]

역사와 배경

17세기 네덜란드 선단은 오늘날 스발바르드라고 부르는 스피츠베르겐 부근에서 고래를 잡고 기름을 가공했다. 그로닝언대 북극연구센터가 1979~1981년에 조사한 스메이렌뷔르흐에서는 건물과 기름 가마 주변에서 수백 개의 직물 조각이 나왔다. 연구자 산드라 요란다 코미스가 정리한 자료에는 모자뿐 아니라 재킷, 바지, 스타킹, 장갑도 포함된다. 일하던 옷의 종류를 보여 주는 자료이지 이 모자 다섯 점이 모두 그 작업장 바닥에서 나왔다는 뜻은 아니다. [1][7]

별도의 조사 장소인 지우스허 아웃케이크(Zeeuwse Uitkijk) 섬에서는 1980년 선원 무덤 50기를 조사했고, 논문 초록은 무덤에서 편물 모자 33점이 나왔다고 정리한다. 국립박물관의 개별 페이지는 17세기 네덜란드 포경선원·기름 정제 작업자 185명의 무덤을 둘러싼 더 넓은 배경 설명을 반복한다. ‘185기의 무덤을 전부 발굴해 185개의 모자를 얻었다’라고 합치면 두 자료의 범위를 혼동한다. 이 글은 발굴 범위의 수치가 출처마다 어떤 집합을 가리키는지 구분하고, 사진 속 모자 다섯 점의 소장번호를 별도로 남긴다. [1][2][3][4][5][6]

박물관 목록의 제작 시기는 한 해를 특정하지 않는다. 예컨대 NG-2006-110-8은 1740~1760년경, -3과 -4는 1700~1800년경, -6과 -12는 1600~1800년을 포함한 넓은 범위로 기록된다. 이는 땅에서 나온 연도와 물건이 만들어진 연도를 구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1980년에 발굴됐다고 1980년 작품이 아니고, 한 차례에 전시된다고 다섯 모자가 같은 선박의 같은 항해에서 만들어졌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2][3][4][5][6]

푸른색과 흰색이 섞인 실과 귀덮개가 보이는 두 겹 모자
사진 2. 푸른색과 흰색이 섞인 실과 귀덮개가 보이는 두 겹 모자 · Rijksmuseum, Amsterdam · NG-2006-110-6 · 공공 영역 표시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인물과 노동

이 모자들의 제작자는 박물관 기록상 모두 익명이다. 착용자의 개인 이름도 사진과 소장 설명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네덜란드 포경선원’이라는 집단 이름을 개인 전기로 바꿔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확하다. 모자를 만드는 데 시간을 들인 사람은 선박에 탔던 사람일 수도, 항구나 가정에서 편물을 만든 사람일 수도 있지만 개별 모자에 그 관계를 입증할 자료는 없다. 모자의 색을 직접 고른 사람과 뜬 사람이 같았는지도 알 수 없다. [2][3][4][5][6]

국립박물관이 설명하는 색으로 동료를 알아보았다는 장면도 흥미로운 해석으로 읽어야 한다. 박물관은 선원들이 혹독한 추위에 눈만 보이도록 싸매고 있었으므로 모자의 색과 무늬가 표지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실제 착용자 명부나 선내 규정에서 확인된 식별 제도를 제시하는 문장은 아니다. 다른 모자들의 차이를 살펴보면 그런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보이지만, ‘모자 무늬가 공식 신분증이었다’는 확정 문장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2][3]

코미스와 동료 연구자들의 공로는 멋진 모자 사진을 얻은 데만 있지 않다. 어떤 조각이 무덤에서 나왔고 어떤 것은 작업장 주변에서 나왔는지, 옷이 실제 노동복이었는지를 나눠 조사한 데 있다. 발굴된 선원의 죽음은 박물관 사진의 장식이 아니다. 한 사람을 다시 이름 붙일 수 없어도, 발견 장소와 보존 상태를 적어 두면 남은 물건을 정직하게 다룰 수 있다. [1]

서로 다른 폭의 적색 청록 검정 연갈색 줄이 있는 두 겹 편물 모자
사진 3. 서로 다른 폭의 적색 청록 검정 연갈색 줄이 있는 두 겹 편물 모자 · Rijksmuseum, Amsterdam · NG-2006-110-3 · 공공 영역 표시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작품과 남아 있는 자료

사진 1의 NG-2006-110-8은 빨강·초록·파랑·노랑·흰색의 가는 줄이 있는 바깥 모자 안에 거칠게 뜬 연갈색 모자를 댄다. 박물관은 바깥 부분이 평평하게 뜬 큰 천에서 잘린 두 조각으로 구성됐다고 적는다. 이것은 ‘모자는 반드시 원통으로만 뜬다’는 오늘의 습관을 깨뜨린다. 바깥 무늬의 색 배치만 보지 말고 안감과 겉감이 다른 편물 밀도를 가졌다는 점을 살피자. 머리둘레 64cm, 높이 33cm라는 소장 치수는 착용자의 정확한 머리 크기가 아니라 보존된 물건의 측정값이다. [2]

사진 2의 -6은 귀덮개가 있는 두 겹 모자다. 국립박물관은 푸른색과 흰색이 섞인 실을 이캇(ikat)이라는 단어로 기술하고, 거칠게 원통형 저지로 편직했다고 적는다. 이 말만 보고 모든 색이 편물 단계에서 두 실을 교차해 만든 복잡한 배색 도안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실의 염색 효과와 코를 뜨며 색을 바꾸는 효과는 다르다. 귀덮개가 목과 귀 쪽의 추위를 막는 실용적 구조였다는 설명은 물건 형태에 근거한 해석이다. [3]

사진 3의 -3은 서로 다른 폭의 적색·청록색·검정·연갈색 줄무늬가 있다. 겉과 안의 모자에도 줄이 있고, 두 부분을 꿰매 겹쳤다고 박물관은 기록한다. 소장 설명에는 10cm당 45코와 40단이라는 세부 편물 밀도도 나온다. 이 숫자를 그대로 새 도안의 게이지로 베끼면 안 된다. 오래된 양모는 수축·훼손·보존 처리를 거쳤을 수 있고, 새 실과 바늘의 조건도 다르다. 다만 박물관이 줄무늬의 색만이 아니라 조직과 조립까지 기록했다는 사실이 복원 연구의 출발점이 된다. [4]

사진 4의 -4는 밝은 갈색·연두·짙은 녹색·푸른색의 줄과 비스듬한 사각형 무늬를 함께 쓴다. 안쪽은 거칠게 뜬 연갈색이며, 박물관은 여러 차례 수선 흔적이 있다고 명시한다. 새것을 만들 때의 솜씨와 오래 쓰기 위한 바느질이 한 물건에 남은 셈이다. 수선 자국의 정확한 연도와 수선자를 사진만으로 알 수 없으므로 항해 중에 누가 어디서 고쳤는지 꾸며 쓰지 않는다. 귀덮개와 두 겹 구조를 보며 무늬가 기능을 방해하지 않도록 어디에 놓였는지 살핀다. [5]

사진 5의 -12는 녹색 양모의 거친 편물, 5cm 폭의 접힌 테두리, 짙은 파랑과 연갈색 줄, 짙은 파랑 직사각형 블록이 특징이다. 머리둘레 48cm, 높이 24cm로 등록되어 사진 1과 크기가 다르다. 차이가 곧 성인·아동의 구별이라고 할 근거는 없다. 보존 상태나 착용 방식, 측정 위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다섯 점 모두 같은 이름으로 전시돼도 각기 다른 무늬·구조·마모 흔적을 가진 개별 물건이다. [6]

사진은 Rijksmuseum의 해당 소장품 페이지에 표시되는 이미지와 연결했다. 각 기록은 물건의 저작권 상태를 ‘공공 영역’으로 표시한다. 사진 원본 페이지와 소장번호를 사진 아래에 붙였고, 사이트가 표시한 화면용 해상도를 사용한다. Rijksmuseum의 이미지·데이터 안내는 공공 영역으로 표시한 소장품 이미지를 무료로 재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박물관의 요청에 따라 각 사진 아래 Rijksmuseum, Amsterdam을 명시했다. [2][3][4][5][6]

수선 흔적과 비스듬한 사각형 무늬가 있는 포경선원 귀덮개 모자
사진 4. 수선 흔적과 비스듬한 사각형 무늬가 있는 포경선원 귀덮개 모자 · Rijksmuseum, Amsterdam · NG-2006-110-4 · 공공 영역 표시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시간으로 다시 읽기

  1. 1614~1660년 무렵 · 스메이렌뷔르흐의 포경 작업장과 기름 가마가 사용된 것으로 그로닝언대 자료가 적는다. [1]
  2. 17~18세기 · 다섯 양모 모자의 박물관 추정 제작 시기. 개별 범위는 서로 다르다. [2][3][4][5][6]
  3. 1979~1981년 · 그로닝언대 북극연구센터의 스발바르드 조사. [1]
  4. 1980년 · 지우스허 아웃케이크에서 무덤 50기 조사, 편물 모자 33점 확인. [1]
  5. 오늘 · Rijksmuseum이 소장번호별 구조와 치수, 공개 이미지 기록을 제공한다. [2][3][4][5][6]
녹색 양모와 파란 직사각형 무늬가 들어간 접힌 테두리 모자
사진 5. 녹색 양모와 파란 직사각형 무늬가 들어간 접힌 테두리 모자 · Rijksmuseum, Amsterdam · NG-2006-110-12 · 공공 영역 표시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다시 읽으며

모자 한 점을 보면 줄무늬보다 먼저 물을 수 있다. 원통으로 떴는가, 평면 편물을 잘라 꿰맸는가. 안감이 있는가, 수선한 자리가 남았는가. 그리고 이 모자가 작업장과 무덤 중 어디에서 발견됐는가. 그 질문에 답할 때 북극의 선원은 낭만적인 실루엣이 아니라 추위 속에서 일하고 옷을 고쳐 입던 실제 사람으로 가까워진다.

사진을 읽을 때 사진 1~5는 Rijksmuseum 소장 모자 NG-2006-110-8, -6, -3, -4, -12의 공식 페이지에서 각각 확인한 화면용 이미지다. 17~18세기 제작 추정 범위와 1980년 발굴을 구분한다. 착용자와 제작자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각 사진 아래 박물관 원본 페이지를 표기한다.

자료와 사진 출처

본문의 번호는 다음 원문 자료를 가리킵니다. 사진의 저작권·이용 조건은 각 사진 아래 원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자료 1 · research.rug.nl
  2. 자료 2 · www.rijksmuseum.nl
  3. 자료 3 · www.rijksmuseum.nl
  4. 자료 4 · www.rijksmuseum.nl
  5. 자료 5 · www.rijksmuseum.nl
  6. 자료 6 · www.rijksmuseum.nl
  7. 자료 7 · www.rijksmuseum.nl
  8. 자료 8 · data.rijksmuseum.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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