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뜨개 역사 | 손뜨개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노르웨이: 살후스 편직 공장과 노동자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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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뜨개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노르웨이: 살후스 편직 공장과 노동자의 마을

시대 1859년 창업, 1989년 폐업, 2020년 산업유산 지정
인물 필리프 크리스티안 클라우센, 요한 에른스트 크리스티안 람, 살후스의 익명 노동자들, 연구자 잉그리드 하우그뢰닝
주요 유물 크로네 마코 면 내의, 양모 양말과 스웨터, 남아 있는 편직 기계·노동자 주택·공장 학교

2020년 촬영한 살후스 편직 공장 건물
사진 1. 2020년 촬영한 살후스 편직 공장 건물 · Odd Roar Aalborg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노르웨이 뜨개를 떠올리면 손으로 색을 바꾸며 만드는 두꺼운 스웨터가 먼저 보일지 모른다. 베르겐 북쪽 바닷가 살후스에는 다른 뜨개 소리가 남아 있다. 양말과 내의의 코가 기계에서 만들어지고, 뜬 천이 재단대와 봉제실을 통과하던 소리다. 1859년부터 1989년까지 운영한 살후스 편직 공장의 건물과 기계, 주택, 학교가 한곳에 남아 있다. 이 유산을 따라가면 ‘뜨개’가 취미이면서 동시에 공장 노동·일상복·지역 경제의 역사였음을 읽을 수 있다. [1][2]

역사와 배경

노르웨이 문화유산청의 산업유산 설명에 따르면 필리프 크리스티안 클라우센과 요한 E. C. 람이 1859년 J. Ramm & Clausen을 세웠다. 훗날의 살후스 트리코타주파브리크는 노르웨이 초기 편직 공장 가운데 하나였으며 문화유산청은 첫 전면 기계화 사례라고 설명한다. 이 문장에서 ‘편직’은 손뜨개가 아니라 기계로 코를 형성하는 직물 생산을 뜻한다. 나라별 뜨개사를 손으로 뜬 스웨터만으로 서술하면 이 층이 빠진다. [2]

왜 바닷가였을까. 문화유산청은 밀라 강과 바다에 가까운 입지가 생산과 운송의 조건이었다고 설명한다. 시작부터 모든 원료와 공정을 한 공장 안에서 해결한 것도 아니다. 초창기에는 완성 실을 구입했고, 미국 남북전쟁 중 면화 공급 문제가 생기자 양모 생산에 무게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세계 원료 무역의 변화가 작은 노르웨이 공장의 소재 선택에 영향을 준 셈이다. 기계는 처음에 인력에 의존했고, 1863년 증기, 1917년 전기로 동력이 바뀌었다. 이 연표를 보면 ‘1859년에 세운 공장의 기계가 지금까지 같은 모습’이라는 인상도 경계하게 된다. [2]

1888년에는 투자 실패로 파산한 뒤 회사를 다시 꾸렸고, 클라우센이 경영을 계속했다. 1865~1888년 노동자는 대략 50~60명이었고 뒤에는 수백 명으로 늘었다. 문화유산청의 다른 소개는 최대 360명이라고 적는다. 두 수치를 한 시기의 인원으로 합쳐 쓰지 않는다. 공장 자체는 1989년에 문을 닫았다. 현재 보이는 기계와 작업실은 긴 시간 동안 바뀐 설비의 층을 품은 박물관이다. [1][2]

2020년 국가유산 지정의 대상은 생산동만이 아니다. 노동자 주택과 관리자 주택, 학교, 길, 놀이 공간, 바다 목욕장까지 보호 범위에 들어간다. 공장은 옷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가족이 어디에서 살고 아이가 어디에서 배울지를 정하는 장소였다. 문화유산청은 노동자 복지 시설을 당시 경영자의 온정주의와 사회적 통제라는 두 면에서 설명한다. 편직 기계의 보존이 노동 조건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는 이유다. [1][2]

2007년 살후스 마을과 바닷가의 모습
사진 2. 2007년 살후스 마을과 바닷가의 모습 · Jenni Douglas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인물과 노동

설립자 두 사람의 이름은 쉽게 기록에 남는다. 그러나 천을 걸고, 뜬 부분의 결함을 보고, 재단하고, 봉제하고, 세탁하고, 포장한 노동자의 이름은 제품 라벨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박물관은 기계와 제품뿐 아니라 공장의 기록을 보관한다고 밝힌다. 1893년 노동자 단체 사진은 관리자와 아들을 식별하지만, 그 사진 한 장으로 모든 노동자의 신원을 확정할 수 없다. 인물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는 이름이 없는 사람들의 노동도 지워지지 않도록 적어야 한다. [3][4]

연구자 잉그리드 하우그뢰닝은 인구조사와 공장 규칙을 이용해 초기 살후스 노동자의 생활과 거주를 추적했다. 박물관의 연구 소개는 이를 19세기 후반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방법으로 제시한다. 공장 사진은 기계의 형태를 알려 주지만 근무 시간과 숙소의 삶까지 말해 주지 않는다. 반대로 규칙과 인구조사는 누가 어떤 질서 안에서 살았는지를 묻게 한다. 다양한 사료를 나란히 읽어야 평범한 편직공의 역사가 드러난다. [4]

오늘 박물관을 운영하는 사람도 역사의 해석에 참여한다. 이들은 방문자가 소모된 줄 알았던 기계를 다시 움직이며 소면, 방적, 편직, 봉제의 순서를 보여 준다. 이는 1989년 이전 공장 노동을 정확히 재현한다는 뜻이 아니다. 박물관의 해설과 현대 제품 생산은 과거 생산라인을 바탕으로 만든 현재의 교육 활동이다. 과거 작업자와 현재 해설자를 한 시기의 인물로 섞지 않도록 주의한다. [3][5]

살후스 공장에 남은 1958년 리터 링 방적기
사진 3. 살후스 공장에 남은 1958년 리터 링 방적기 · Hanne Dale · Tekstilindustrimusee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작품과 남아 있는 자료

공장의 대표 상품을 ‘노르웨이 문양 스웨터’ 하나로 줄일 수 없다. 박물관은 크로네 마코 면 내의, 양모 양말, 일상복과 스웨터를 기록한다. 내의는 피부에 닿는 기본 층으로, 면의 촉감과 반복 세탁이 중요하다. 양모 양말은 발의 마찰과 보온에 대응해야 한다. 같은 편직 기술이라도 실의 섬유, 편성 조직, 두께, 후가공과 사용 목적이 다르다. 박물관이 보존하는 의복을 본다면 화려한 무늬보다 먼저 이 차이를 관찰해 보자. [1][3][6]

박물관의 관람 안내는 소면·방적·편직·봉제의 흐름을 따라가도록 구성돼 있다. 편직은 코로 천을 만드는 단계이고 봉제는 그 천을 옷 형태로 결합하는 단계다. 재단된 편물의 가장자리 처리와 봉합선은 집에서 통으로 뜨는 손뜨개 스웨터와 다른 설계 선택을 보여 준다. 박물관 매장 설명에는 옛 기계로 뜬 편물을 세탁, 재단, 봉제, 증기 처리, 라벨 부착해 현대 상품으로 내는 과정도 있다. 이 상품은 당시의 재고가 아니라 과거 설비로 만든 현재의 옷이라고 밝혀야 한다. [5][7]

사진 다섯 장은 현대에 촬영된 살후스 공장·마을과 박물관에 남은 세 종류의 설비를 보여 준다. 첫 두 사진은 건물과 마을의 관계를, 나머지는 방적기·권사기·원형 편직기를 보여 준다. 1958년 방적기와 1956년 권사기는 실을 만드는 단계에 속하고 1963년 원형 편직기는 코를 만드는 단계에 속한다. 카메라의 촬영 날짜는 기계 제작 연도가 아니다. 이 사진들만으로 크로네 마코 면 내의의 특정 설계자나 생산 연도를 지목할 수도 없다. 공장의 의미는 한 제품의 원조 인증보다 생산의 단계와 노동자의 마을이 함께 남았다는 데 있다. [1][2][8][9][10][11][12]

손뜨개인이 이곳의 자료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기계 속도를 흉내 내는 법이 아니다. 코가 만들어진 다음 옷이 되기까지 실의 공급, 오류 검사, 세탁, 재단, 봉제, 유통이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손뜨개 옷도 코만 완성하면 끝나지 않는다. 세탁 뒤 게이지가 변하는지, 봉합선이 피부에 닿는지, 오래 신은 양말의 뒤꿈치가 어디서 닳는지를 살피면 공장 제품과 손뜨개 작품을 같은 생활의 질문으로 읽을 수 있다. [3][5][6]

살후스 공장에서 쓴 1956년 실 권사기
사진 4. 살후스 공장에서 쓴 1956년 실 권사기 · Hanne Dale · Tekstilindustrimusee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시간으로 다시 읽기

  1. 1859년 · 클라우센과 람이 편직 사업을 시작. [2]
  2. 1863년 · 공장의 동력이 증기로 이동. [2]
  3. 1888년 · 파산 뒤 회사 재편. [2]
  4. 1917년 · 전기 동력 도입. [2]
  5. 1989년 · 공장 가동 종료. [1][2]
  6. 2020년 · 생산동과 공장 마을을 포함한 산업유산 지정. [1]
살후스 공장의 벨트 구동 원형 편직기, 앞 기계는 1963년 제작
사진 5. 살후스 공장의 벨트 구동 원형 편직기, 앞 기계는 1963년 제작 · Hanne Dale · Tekstilindustrimusee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다시 읽으며

살후스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특정 문양보다 생산의 연결이다. 바다로 들어온 원료, 실, 기계의 코, 바느질, 노동자의 집과 학교, 일상복을 입은 사람까지 한 동네에 이어진다. 노르웨이 뜨개사를 다시 펼칠 때 손으로 만든 무늬와 공장 기계의 코를 서로 다른 역사로 정확히 이름 붙이고, 두 역사 모두를 옷을 입은 사람의 삶에서 만나 보자.

사진을 읽을 때 사진 1·2는 2020년 공장 외관과 2007년 살후스 마을의 모습이다. 사진 3~5는 박물관에 보존된 1958년 방적기, 1956년 권사기, 1963년 원형 편직기를 현대에 촬영한 기록이다. 19세기 공장 내부 사진으로 오인하지 않는다. 사진별 작가와 Commons 이용 조건을 바로 아래 적었다.

자료와 사진 출처

본문의 번호는 다음 원문 자료를 가리킵니다. 사진의 저작권·이용 조건은 각 사진 아래 원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자료 1 · www.riksantikvaren.no
  2. 자료 2 · www.riksantikvaren.no
  3. 자료 3 · muho.no
  4. 자료 4 · muho.no
  5. 자료 5 · muho.no
  6. 자료 6 · muho.no
  7. 자료 7 · muho.no
  8. 자료 8 · commons.wikimedia.org
  9. 자료 9 · commons.wikimedia.org
  10. 자료 10 · commons.wikimedia.org
  11. 자료 11 · commons.wikimedia.org
  12. 자료 12 · commons.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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