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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와 달력띠는 같은 천이 아니다: 페루 타킬레 섬의 편물과 직물

시대 안데스의 지역 섬유 전승, 1950년대 이후 관광의 변화, 2005·2008년 유네스코 기록까지
인물 프란시스코 우아타 우아타, 페드로 우이예 키스페, 알레한드로 플로레스 우아타, 후안 키스페 우아타와 타킬레의 제작자들
주요 유물 귀덮개가 달린 편물 모자 ‘추요’와 직조한 ‘달력띠’

2026년 촬영된 페루 티티카카호의 타킬레 섬 전경
사진 1. 2026년 촬영된 페루 티티카카호의 타킬레 섬 전경 · H.dav.are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페루 타킬레 섬을 소개하는 사진에는 눈에 띄는 두 물건이 자주 함께 놓인다. 귀를 덮는 알록달록한 모자 ‘추요’와 사람의 허리를 두르는 넓은 ‘달력띠’다. 둘 다 섬유로 만들지만 제작법은 다르다. 유네스코는 모자를 편물(knitted)로, 띠를 직물(woven)로 분명히 구분한다. 그 차이를 읽으면 타킬레를 무턱대고 ‘남미 뜨개 패턴의 원형’이라 부르는 대신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입고 전하는지 볼 수 있다. 이 글은 한 섬의 기록을 페루 전체의 기원담으로 키우지 않고, 전승과 관광 사이의 변화를 함께 살핀다. [1]

이 글의 현장 사진은 2003~2026년에 촬영된 것이다. 고대 잉카 복식의 실물이나 유네스코 등재 당시의 공식 사진이 아니다. 사진에서 확인되는 행동·복장과 문서에서 확인되는 기술·역사를 구분해서 읽는다. [1][7][8][9][10][11]

역사와 배경

타킬레 섬은 페루 안데스 고원의 티티카카호에 있다. 유네스코의 무형유산 설명은 모든 연령의 남성과 여성이 섬유 제작에 참여하고, 만든 물건을 공동체 구성원이 일상에서 입는다고 적는다. 섬이 1950년대까지 본토와 비교적 떨어져 있었고 공동 의사결정의 중요성이 남아 있다고도 한다. 이 조건은 관광 기념품의 생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식의 사회적 자리를 보여 준다. 그러나 오늘의 한 사진을 고대 생활 그대로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1]

유네스코는 섬의 직조 전통이 잉카·푸카라·코야 문명과 연결된 안데스 문화 요소를 보존한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오늘의 천에는 새 그림과 현대적 상징도 들어간다고 한다. 오래된 기술은 시간이 멈춘 물건이 아니라 계속 재구성되는 실천이다. 특히 편물과 선사시대부터의 네 말뚝 바닥직기 직조를 모두 ‘뜨개’라고 번역하면 다른 도구와 코 구조가 사라진다. 유네스코가 ‘textile art’라는 더 넓은 범주를 쓰는 이유를 한국어에서도 보존해야 한다. [1]

이 전승은 2005년 처음 유네스코 인정을 받았고, 2008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연도를 하나로 합쳐 ‘2005년 등재’라고 쓰기 쉽지만, 발표와 대표목록 등재는 문서상 다른 단계다. 지정 자체가 개별 작품의 제작일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섬 안의 학교는 지역 기술을 배우는 장소로 소개된다. 기록이 남긴 것은 박물관의 오래된 한 모자가 아니라 제작과 학습이 계속되는 공동체다. [1][2]

관광은 섬유 판매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었지만, 유네스코는 수요 증가가 재료와 생산, 물건의 의미를 바꾸었다고 경고한다. 인구가 늘며 본토에서 더 많은 물자를 들여와야 했다는 설명도 있다. ‘전통적인 손작업’이라는 소비자 기대만으로 모든 실이 섬에서 생산됐으리라 상상할 수 없다. 재료가 어디서 왔고 누구에게 팔리는지 묻는 일 역시 문양을 읽는 일만큼 중요하다. [1]

2003년 타킬레 섬에서 뜨개하는 남성 세 사람
사진 2. 2003년 타킬레 섬에서 뜨개하는 남성 세 사람 · Bcasterline /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인물과 노동

타킬레의 기술을 설명할 때 기록에 없는 사람에게 임의의 작가명을 붙이지 않는다. 페루 국립문화연구원의 2009년 공동체 구술집에는 프란시스코 우아타 우아타, 페드로 우이예 키스페, 알레한드로 플로레스 우아타, 후안 키스페 우아타가 장인으로 실명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특정 사진 속 익명 인물과 동일하다고 추정할 수 없지만, 타킬레 기술의 변화를 자기 말로 증언한 사람들이다. [12] 유네스코의 개관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 공동체 활동을 말하고, 페루의 관광청 자료는 여성들이 띠·담요·작은 가방 등 직조물을, 남성들이 조끼·스웨터·추요 같은 의복을 만드는 분업을 소개한다. 이는 해당 관광 자료의 일반적 설명이다. 모든 가정과 모든 개인이 예외 없이 같은 역할을 한다고 읽어서는 안 된다. [1][3]

페루가 유네스코에 제출한 정기 보고 자료에는 바닥직기는 주로 여성, 발판 직기와 바늘은 주로 남성이 사용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기법의 차이와 노동의 배분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자료다. 보고서는 판매도 공동체 안에서 순번을 바꾸어 맡는다고 적는다. 한 사람의 유명 디자이너보다 여러 제작자와 판매자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다. 다만 문서의 성별 서술을 규범처럼 고정하여 현재 개인의 실제 일을 추측하지 않는다. [4]

유네스코의 전승 강화 사업은 기술의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일을 다룬다. 학교에서 배우고 집에서 일상적으로 입고, 방문객에게 팔면서도 어느 의미가 달라지는지를 공동체가 판단해야 한다. 독자에게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정보가 필요하다. 제작자의 이름이 실제로 확인되는 개별 작품이라면 정확히 기록하고, 그렇지 않으면 ‘타킬레 공동체의 작업’이라는 범위로 말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영웅 전기를 더하는 것은 지식을 풍부하게 하지 않는다. [1][2]

프란시스코 우아타 우아타는 추요의 색과 크기가 변했다고 회고하고, 알레한드로 플로레스 우아타는 예전 추요가 더 작았다고 기억한다. 페드로 우이예 키스페도 문양과 색채의 변화를 설명한다. 이는 수십 년을 건너뛴 장인의 구술이라는 점을 밝히며 읽어야 한다. 한 장인의 기억을 섬의 모든 모자에 적용하거나, 오늘의 관광 상품을 오래된 전통의 열화판이라고 단정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12]

2006년 타킬레 섬에서 실을 잣는 여성
사진 3. 2006년 타킬레 섬에서 실을 잣는 여성 · Alfredobi /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작품과 남아 있는 자료

추요는 귀덮개가 달린 편물 모자다. 머리 둘레를 감싸는 고리 구조와 귀를 덮는 부분은 의복의 기능을 함께 만든다. 반면 달력띠는 폭이 넓은 직조 허리띠로 농사와 의례의 연간 순환을 나타내는 문양이 들어간다고 유네스코가 설명한다. 띠는 공동체 구전과 역사를 읽는 자료이기도 하다. 색이 비슷하다고 모자의 코수를 띠의 가로실 수로 옮길 수 없고, 무늬가 나타나는 원리도 같지 않다. [1]

안데스의 네 말뚝 바닥직기는 땅 가까이에 놓인 틀에서 세로실과 가로실을 교차시키는 도구다. 대바늘 편물은 한 코의 고리를 다음 코로 이어 탄성을 만든다. 손으로 만들었다는 공통점만으로 두 기술을 한 도안으로 환원하지 않자. 추요를 직접 떠 보려면 원본 모자의 실물 치수, 뒤집힌 안쪽 실의 처리, 귀덮개의 증감, 세탁 후 게이지가 필요하다. 유네스코의 기술 설명과 이 글의 현장 사진은 문화와 형태의 단서이지 재현 도안이 아니다. [1][4]

달력띠의 문양을 단순한 장식 차트로 가져오는 데도 주의가 필요하다. 유네스코는 그림들이 구전과 농업·의례의 주기를 담는다고 설명한다. 특정 띠의 기호를 제작자나 공동체의 설명 없이 외부인이 마음대로 해석할 수 없다. ‘달력’이라는 이름만 보고 현대 양력 열두 달을 정확히 표시한다고 단정해도 안 된다. 원본의 맥락을 먼저 물은 뒤 기술적으로 어디까지 다시 만들 수 있는지 결정해야 한다. [1]

페루 관광청은 추요를 모자, ‘chumpi’를 허리띠, ‘lliclla’를 어깨에 두르는 천, ‘chuspa’를 작은 가방으로 구분한다. 실제로 물건을 볼 때는 이름, 입는 자리, 제작 도구를 나란히 확인하자. 관광 판매로 인해 크기나 색·재료가 달라진 물건도 단순히 진짜와 가짜로 나누기보다 언제 누구를 위해 만들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전승은 정지된 표본이 아니라 사람과 시장이 만나며 조정되는 일이다. [1][3][4]

2009년 구술집은 어린이가 5~7세 무렵부터 작은 작업을 배우고 추요의 형태와 문양을 단계적으로 익히는 경험을 기록한다. 여성의 띠와 리본 작업, 남성의 발판 직기 작업도 함께 다룬다. 이 기록은 ‘전통’이 완성품의 색만 이어받는 일이 아니라 손의 순서와 도구의 사용을 배워 가는 과정임을 보여 준다. 다만 구술집의 당시 관행을 오늘 모든 타킬레 주민에게 똑같이 적용해서는 안 된다. [12]

사진 2와 4는 사람들이 뜨개하는 동작을 보여 주지만 완성품의 안쪽 구조나 실의 재료를 확인해 주지 않는다. 사진 3은 섬에서 실을 잣는 장면이고, 사진 5는 직조 천을 든 여성의 모습이다. 방적, 고리로 짜는 편물, 날실·씨실을 교차하는 직조는 연결되지만 서로 같은 공정은 아니다. 사진 1의 섬 전경은 제작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보여 줄 뿐 고대 작업장을 증명하지 않는다. [1][7][8][9][10][11]

2006년 타킬레 섬에서 모자를 쓰고 뜨개하는 남성
사진 4. 2006년 타킬레 섬에서 모자를 쓰고 뜨개하는 남성 · Thomas Quine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시간으로 다시 읽기

  1. 안데스의 긴 전승 · 유네스코는 잉카·푸카라·코야 문화와 연결된 섬유 전승을 기록한다. [1]
  2. 1950년대까지 · 타킬레 섬은 본토와 비교적 떨어져 있었다. [1]
  3. 2005 · 타킬레 섬유예술이 처음 유네스코의 인정을 받았다. [1]
  4. 2008 ·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1]
  5. 현재 · 학교·관광·공동체 판매 속에서 기술과 의미가 이어지고 변화한다. [1][2][4]
2011년 타킬레 섬에서 전통 직조 천을 든 여성
사진 5. 2011년 타킬레 섬에서 전통 직조 천을 든 여성 · Guy Delsau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원본·이용 조건) · 이미지 주소

다시 읽으며

타킬레에서 다음에 볼 것은 ‘화려한 페루 패턴’ 한 장이 아니다. 모자의 고리와 띠의 교차를 구분하고, 그 물건을 만든 사람과 쓰는 사람, 실의 이동과 관광 시장을 함께 보자. 기록에 남은 장인의 실명과 이름 없는 제작자를 각각 정확히 다루며 공동체의 기술을 정확히 부르는 것부터 전문적인 기록이 시작된다.

사진을 읽을 때 사진 1은 2026년 타킬레 섬 전경, 사진 2는 2003년 촬영된 남성 편물가 세 사람, 사진 3은 2006년 방적하는 여성, 사진 4는 2006년 편물하는 남성, 사진 5는 2011년 전통 직조 천을 든 여성이다. 유네스코 갤러리 사진이나 역사 유물 사진이 아니다. 개별 인물의 이름과 완성품의 기술·재료는 파일 설명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자료와 사진 출처

본문의 번호는 다음 원문 자료를 가리킵니다. 사진의 저작권·이용 조건은 각 사진 아래 원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자료 1 · ich.unesco.org
  2. 자료 2 · ich.unesco.org
  3. 자료 3 · www.peru.travel
  4. 자료 4 · ich.unesco.org
  5. 자료 5 · www.peru.travel
  6. 자료 6 · ich.unesco.org
  7. 자료 7 · commons.wikimedia.org
  8. 자료 8 · commons.wikimedia.org
  9. 자료 9 · commons.wikimedia.org
  10. 자료 10 · commons.wikimedia.org
  11. 자료 11 · commons.wikimedia.org
  12. 자료 12 · geoportal.cultura.gob.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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