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아바카 레이스 스카프: 밧줄 섬유가 편물의 고리가 될 때
자료 조사·작성: 뜨자뜨개 / DDUJA KNIT
아바카라고 하면 굵은 밧줄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클리블랜드 미술관에는 길이 약 122cm, 폭 14cm의 가늘고 길쭉한 레이스 스카프가 있다. 필리핀에서 약 1910–192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분류된 이 물건의 기법은 편물(knitted)이라고 적혀 있다.[1] 줄기를 질긴 섬유로 쓰는 식물이 어떻게 열린 고리의 스카프가 되었을까? 사진 한 장과 당시 필리핀의 산업교육 자료, 현재 섬유 표준을 나란히 읽으면 답을 모두 복원할 수는 없어도 재료와 기법을 혼동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박물관 카드의 물음표 하나
소장번호 1923.864의 제목은 Lace Scarf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재료·기법을 정확히 “abacá fiber(?); knitted”라고 쓴다.[1] 괄호 속 물음표는 재료 식별에 남겨 둔 유보로 읽어야 한다. 미술관 설명에는 동부 비사야스 또는 비콜 지역일 가능성이 언급되지만 확정된 제작지는 아니다. 제작자의 이름, 바늘의 종류, 사용한 실의 굵기나 뽑는 과정도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기증 경로에 나오는 미르타 레오노라 존스(Myrta Leonora Jones)는 소장 이력의 인물이지 확인된 제작자가 아니다.[1]

사진에서 확실히 볼 수 있는 것은 양끝보다 훨씬 긴 가는 띠의 비례, 중앙을 따라 반복되는 열린 격자와 그 위아래의 상대적으로 촘촘한 띠, 물결처럼 돌출한 가장자리다. 가운데의 작은 구멍들이 규칙을 만들고 테두리가 이를 붙잡는다는 시각적 설명은 가능하다. 다만 한 장의 전체 사진을 확대해도 각 고리가 어느 방향으로 넘어갔는지, 가장자리에서 어떤 코를 늘리거나 줄였는지까지 안정적으로 읽을 수 없다. ‘레이스’는 열린 표면의 이름이고, 그 표면을 만드는 방법은 편물·코바늘·보빈·바늘 레이스·매듭 등으로 갈라진다. 이 경우에는 미술관이 knitted라고 명시했으므로 편물로 부르되, 사진만을 근거로 특정 도안이나 코 수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밧줄의 섬유가 옷감에 이르는 길
아바카는 Musa textilis라는 식물의 섬유다. 필리핀의 2016년 국가표준은 잎집 바깥 부분에서 섬유를 분리하는 손 작업과 기계 보조 작업을 구분하고, 섬유의 길이·굵기·질감 등을 등급 판단의 요소로 다룬다.[5] 이 현대 표준은 재료를 이해하는 비교 자료이지 100여 년 전 스카프에 적용된 검사표가 아니다. 스카프를 만든 사람이 어떤 등급을 골랐는지 기록은 말하지 않는다.

필리핀 국립박물관은 필리핀 직물에 쓰이는 여러 섬유 가운데 아바카를 꼽고, 부투안의 섬유 전시는 아바카로 직조한 천을 보여 준다.[6][7] 바로 여기에서 단어를 구별해야 한다. 같은 아바카를 썼어도 직조는 날실과 씨실의 교차이고 편물은 고리의 연속이다. 부투안 전시에 등장하는 직조 천을 이 스카프의 제작법이라고 부를 수 없다. 재료의 공유는 기법의 공유가 아니다.

1913년의 학교 기록과 그 한계
스카프 제작 추정 시기와 겹치는 1913년의 The Philippine Craftsman에서 필리핀 교육국 산업정보부의 존 F. 미니어(John F. Minier)는 아바카를 주로 밧줄·끈의 원료로 설명하면서, 학교에서 슬리퍼·바구니·가방 같은 소품에도 활용했다고 적는다.[2] 글의 끝에서는 몇몇 지역에서 묶은 아바카 섬유로 레이스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보고한다. 이는 아바카를 밧줄과 직물 바깥의 장식 물건에 적용하려는 동시대의 관심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레이스가 편물이었는지, 클리블랜드 스카프가 학교에서 만들어졌는지 증명하지 않는다. 글 자체도 미국 식민기 교육 행정의 관점에서 시장성과 학교 작업을 평가한 문헌이다.
같은 해 감독 교사 에스텔라 M. 머독(Estella M. Murdoch)이 W. W. 웨스턴 부인의 조력을 받아 쓴 레이스 해설은 바늘·보빈·기계 레이스를 구별한다.[3] 당대 필리핀의 레이스 교육과 산업을 이해하는 사료지만, 여기에도 1923.864의 도안이나 제작자 이름은 없다. 오히려 ‘레이스’라는 넓은 이름 아래 기법이 달라질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다른 필리핀 아바카 소장품인 신발 1932.650은 편물이 아니라 매듭 레이스(macramé)로 분류된다.[8] 같은 식물 섬유라도 구조를 유물별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지금의 섬유 사진에서 볼 것과 볼 수 없는 것
현재의 필리핀 섬유산업개발청(PhilFIDA) 기술 안내는 아바카를 손으로 벗기거나 기계로 추출하는 방식, 공식 섬유 등급과 종이·끈·섬유 공예 등의 용도를 소개한다.[4] 현장에서 긴 섬유를 건조하는 사진을 함께 보면 원료가 완성된 편물 한 코로 곧장 바뀌는 것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진을 1910년대 작업장의 복원도처럼 놓으면 시간과 장소를 뒤섞는다. 아래 섬유는 스카프 원사가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지 보여 주는 증거가 아니라, 아바카 섬유의 형태를 비교하기 위한 별도 자료다.

이 스카프가 흥미로운 까닭은 재료가 이례적이라고 하여 기법까지 수수께끼로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박물관의 분류는 편물이고, 사진은 좁고 긴 열린 표면을 보여 준다. 동시대 교육지에는 아바카의 공예적 활용과 레이스 실험이 나타나지만 특정 스카프까지 연결하는 문서는 없다. 재료 식별 뒤의 물음표와 제작자 이름의 빈칸도 그대로 남는다. 다음에 레이스 도안을 펼칠 때는 ‘무슨 섬유인가’, ‘고리·교차·매듭 중 어떤 구조인가’, ‘사진에서 직접 읽은 것과 기록이 분류한 것은 무엇인가’를 서로 다른 줄에 적어 보자. 그 구분이 낯선 재료를 실제 편물로 읽는 첫 단계다.
원자료
- Cleveland Museum of Art, Lace Scarf, 1923.864, c. 1910–23; 재료 표기의 물음표·편물 분류·치수·기증 경로.
- John F. Minier, “Abaca: The Rope and Twine Industry,” The Philippine Craftsman (1913), 특히 533–534쪽; 필리핀 대학교 디지털 소장.
- Estella M. Murdoch with Mrs. W. W. Weston, “Lace and Lace Making,” The Philippine Craftsman 2.6 (1913); 레이스 기법과 교육 담론.
- PhilFIDA, Abaca Technoguide, 2024; 현대 추출·등급·용도.
- PNS/BAFS 180:2016, Abaca Fiber Grading and Classification; 현대 섬유 표준.
- National Museum of the Philippines, Ethnology; 섬유·소장 범위.
- National Museum of the Philippines, Panapton sa Lumad; 아바카 직조 전시.
- Cleveland Museum of Art, Pair of Shoes, 1932.650; 아바카 매듭 레이스의 비교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