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다 아촐라의 편직기와 집 안 작업장: 이탈리아에서 멜버른까지
손뜨개처럼 보이는 니트 한 벌이 실제로는 어떤 노동에서 나왔는지 알고 싶다면, 옷만 보아서는 부족하다. Museums Victoria가 보존한 에다 아촐라(Edda Azzola)의 편직기, 이탈리아어 작업 수첩, 시험편과 완성 의복을 나란히 놓으면 한 이주 여성의 기술과 멜버른의 의류 생산 방식이 드러난다. 이 글은 다섯 실물의 기록을 중심으로 수동 기계 편직과 손마감을 구별하고, 박물관 해설 사이의 연도 차이도 숨기지 않는다.[1–7]
이탈리아 가정의 편직 기술이 멜버른으로 오기까지
박물관 인물 해설은 아촐라가 1927년 이탈리아 프리울리의 폰테바에서 태어났다고 쓰지만, 여러 개별 소장품 설명은 출생지를 모조 우디네세로 적고 네 살에 폰테바로 옮겼다고 한다. 서로 다른 기록을 하나의 확정 출생지로 합치지 않는 편이 정확하다. 두 설명은 어린 시절을 프리울리 지역에서 보냈고, 가족이 집의 편직기로 이웃이 맡긴 실을 옷으로 만들었다는 큰 맥락에서는 일치한다. 그 수입은 어머니가 딸들의 혼수품을 마련하는 데 썼다고 박물관은 기록한다.[1,4]
아촐라는 1953년 안젤로 아촐라와 결혼했다. 남편이 1954년 먼저 호주로 떠났고, 아촐라는 1955년 뒤따라 멜버른에 도착했다. 처음부터 니트 회사를 운영한 것이 아니다. 박물관 해설에는 누비이불 공장 일과 대학 병리학과 실험기구 청소 노동, 1958년 출산이 차례로 나온다. 그해 멜버른에 있던 다른 이탈리아 이주 여성에게서 자신이 알던 것과 비슷한 편직기를 사며 익숙한 기술을 다시 소득으로 바꿀 길을 찾았다.[1]
편직기: 집 안의 작업장이 남긴 도구
소장품 HT 18348은 스위스 Dubied가 만든 손으로 움직이는 두 침상 편직기다. 1950년 무렵 제작된 이 기계는 먼저 다른 이주 여성이 이탈리아에서 가져왔고, 1958년 아촐라에게 넘어갔다. 박물관은 그녀가 피츠로이 노스와 이후 레저버의 집에서 사용했다고 기록한다. ‘기계 편직’은 자동 대량생산과 같은 말이 아니다. 이 물건에는 바늘 침상, 왕복 캐리지, 위쪽에서 실을 공급하는 금속 팔, 추가와 빗 같은 부속이 함께 남아 있다. 작업자는 캐리지를 움직이고 실과 바늘, 형태를 다루어야 했다.[3]

남편 안젤로는 허리를 계속 굽히지 않도록 무쇠 틀 아래에 나무 받침을 댔고, 아들의 다리가 움직이는 부품에 끼일 뻔한 뒤에는 두 손으로 다루는 캐리지로 바꿨다고 소장품 설명이 전한다. 이 개조는 편직 기술뿐 아니라 집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자세와 아이의 안전까지 기계의 역사에 포함시킨다. 기록이 뒷받침하는 범위는 이 가정의 조정이지, 그 시대 모든 가정용 편직기의 표준 설계가 아니다.[3]
수첩에서 시험편, 완성품까지
HT 18380 작업 수첩에는 디자이너와 상의하며 그린 의복 스케치, 디자인과 크기, 제작에 관한 이탈리아어 메모가 남아 있다. 리카르도 니트웨어(Ricardo Knitwear)를 소개하는 별도 박물관 해설에 따르면 리처드 찰루프스키가 디자이너의 구상과 실을 숙련 편직자에게 전하고, 아촐라 같은 편직자는 기계에서 형태를 어떻게 만들지 판단했다. 완성한 부분은 공장에서 조립됐다. 회사가 설명한 ‘fully fashioned’은 이미 짠 천을 재단하는 대신 편직하면서 형태를 만드는 방식이다. 수첩을 특정 한 벌의 완전한 공개 도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설계와 현장 판단이 만나는 자료다.[2,5]

베이지색 왼쪽 카디건 앞판 HT 18503은 아촐라가 옷을 만들기 전에 시험한 여러 편물 중 하나로 분류된다. 사진 속 조각은 판매된 카디건 전체가 아니다. 박물관 기록은 그것이 왼쪽 앞판이라는 사실까지 말하지만 코 수, 게이지, 완성품과의 일대일 대응을 제공하지 않는다. 견본을 볼 때는 ‘한 벌을 만들었다’는 성급한 결론보다 형태를 미리 시험한 물증이라는 해석이 안전하다.[6]

짙은 남색 카디건 HT 18424는 더 흥미로운 경계 사례다. 박물관은 상업적 목적으로 만든 옷이지만 공장에 판매되지는 않았다고 명시한다. V넥과 은색 단추가 보이는 실제 의복이 남았어도 어느 백화점에서 팔렸다고 쓸 근거는 없다. 리카르도 제품이 마이어, 데이비드 존스, 조지스 등에 공급됐다는 회사의 일반 연혁을 이 개별 카디건의 판매 이력으로 바꾸지 않는다.[2,7]

이탈리아의 개인 옷과 호주의 임금노동은 다르다
남색 양모 수영복 HT 18437은 아촐라가 1950년대 이탈리아에서 가족 편직기로 자신을 위해 만든 옷이다. 빨강·회색 줄무늬가 더해졌으며 몇 차례만 착용했다고 소장품 카드에 적혀 있다. 이 옷은 아촐라의 기계 편직 기술이 호주 도착 전에 이미 있었다는 증거이지만, 리카르도 상표를 달아 멜버른에서 팔린 의복은 아니다. 제작지와 이후 호주에서의 사용 기록을 구분해야 한다.[4]

호주에서 아촐라는 폴란드 출신 공장주 리처드 찰루프스키와 일했다. 그는 실을 제공했고 숙련된 재택 편직자들은 코트, 재킷, 치마, 점퍼와 카디건의 편물 부분을 만들고 손으로 마무리했다. 박물관 인물 해설은 아촐라가 수요와 마감일에 따라 하루 5~6시간 일했고 1974년 무렵 주당 약 70달러를 벌었다고 기록한다. 이 수치는 그 해설에 실린 아촐라 한 사람의 노동 정보이지 당시 모든 편직자의 평균 임금이 아니다.[1,2]
연도 기록의 차이도 남겨 둔다. 아촐라의 인물 해설과 몇몇 소장품 카드는 그녀가 일하던 공장이 1974년에 닫혔다고 쓰지만, 리카르도 니트웨어의 기업사 해설은 브랜드 폐업을 1978년으로 적고 아촐라가 3~4년 앞서 은퇴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1974년을 아촐라의 상업 작업이 끝난 시점으로, 1978년을 별도 기업사 해설이 제시한 브랜드 종료 시점으로 각각 출처와 함께 읽는다. 두 기록의 표현을 동일한 사건의 확정 날짜라고 단정하지 않는다.[1–3]
다섯 물건이 남기는 질문
기계는 도구를, 수첩은 설계 언어를, 앞판 시험편은 실험을, 남색 카디건은 판매되지 않은 완성품을, 수영복은 이주 전의 개인 사용을 보여 준다. 이들을 한 사람의 일과 집이라는 맥락에서 읽으면 ‘손뜨개냐 기계냐’라는 단순한 선택보다 풍부한 역사가 된다. 아촐라는 기계를 손으로 움직이고 형태를 판단했으며 마감은 손으로 했다. 그렇다고 모든 작품이 같은 시기, 같은 주문처, 같은 제작 목적에서 나왔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이후 아촐라는 편직기로 가족과 친구를 위한 옷도 만들었다는 박물관 기록이 있다. 이 물건들은 여성의 재택 노동을 낭만화하기보다 기술, 임금, 돌봄, 안전과 이주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묻게 한다. 다음에 오래된 니트 한 벌을 볼 때는 누가 실과 디자인을 제공했는지, 누가 형태를 결정했는지, 어느 부분이 기계에서 만들어지고 어디를 손으로 마무리했는지 물어보자.
원문 소장품과 해설
- [1] Museums Victoria, Edda Azzola, Italian Migrant & Textile Worker.
- [2] Museums Victoria, Richard Charlupski’s Ricardo Knitwear Melbourne.
- [3] HT 18348, Dubied 편직기.
- [4] HT 18437, 양모 수영복.
- [5] HT 18380, 작업 수첩.
- [6] HT 18503, 카디건 앞판 시험편.
- [7] HT 18424, 남색 카디건.
본문 사진은 Museums Victoria 소장품 실사진 5장이다. 각 사진의 CC BY 4.0 조건과 출처를 해당 이미지 옆에 표시했다. AI 제작 이미지는 사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