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모자의 여행: 에이메 메차르의 편물과 이주 기억
뜨개 모자 한 점을 보고 “어느 나라의 전통인가”라고 묻기 쉽다. 그러나 멜버른 Museums Victoria에 보존된 에이메 메차르(Aime Metsar)의 모자와 장갑은 더 구체적인 질문을 요구한다. 누가, 어느 시점에, 어느 지역의 무늬를 어떤 삶의 자리에서 다시 떴을까? 박물관은 이 세트를 에스토니아 출신 제작자가 1991년 멜버른에서 손으로 뜬 울 편물로 기록한다. 야르바야니(Järva-Jaani) 지역의 전통 허리띠 무늬가 출처라고도 적는다. 따라서 이 물건은 1940년대 난민촌에서 만들어진 원본 모자가 아니라, 이주 뒤에 다시 만들어진 1991년 작품이다. [1]
손뜨개 모자와 장갑: 한 세트 안의 세 물건
소장번호 SH 911634는 모자와 장갑 한 쌍의 묶음이다. 검정·흰색·노랑·빨강·초록 울실이 무늬를 이루고, 모자에는 곧게 선 테두리가 있다. 장갑은 빨간 무늬가 있는 손가락 끝과 길게 내려오는 무늬 커프스가 특징이다. 박물관이 제시한 전체 치수는 모자 길이 22cm·높이 26.5cm, 장갑은 32×12cm다. 이 수치는 착용감을 재현하는 완성 도안이나 게이지가 아니라 소장품 치수로 읽어야 한다. [1]

전체 사진은 한 벌이라는 관계를 보여주지만, 무늬의 세부는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두 번째 모자 사진을 보면 높게 올라온 가장자리와 반복되는 색 배치를 비교하기 좋다. 그렇다고 사진만 보고 배색 단수, 뜨개바늘 호수, 감아코 만드는 방법을 확정할 수는 없다. 박물관이 명시한 것은 손뜨개와 울이라는 점이며, 세부 도안은 제공하지 않는다. [1]

허리띠 무늬가 손의 형태로 옮겨질 때
목록은 무늬의 지역을 야르바야니로 특정한다. “에스토니아식”이라는 말만으로 모든 지역의 모자가 같은 조직을 사용했다고 확대할 수 없다. 여기에서 확인되는 것은 메차르가 그 지역의 허리띠 무늬를 1991년 모자·장갑 세트에 적용했다는 박물관의 설명이다. 허리띠와 장갑은 폭, 방향, 늘어남이 다르므로 옮겨진 무늬의 정확한 코 배열은 별도의 도안이나 실물 조사 없이는 복원할 수 없다. [1][2][3]
장갑은 단순한 배색 표면만이 아니다. 손가락마다 색과 끝단이 보이고, 길게 늘어지는 커프스에는 무늬와 가장자리가 함께 있다. 소장품은 좌·우 장갑을 각각 SH 911634.2와 .3으로 기록한다. 두 개별 카드의 설명이 거의 같아도 두 장갑을 두 시대의 예로 세어서는 안 된다. 한 쌍을 서로 다른 면에서 관찰하게 하는 자료다. [2][3]


1950년 난민촌의 모자와 1991년의 모자
박물관은 1940년대 에스토니아에서 모자와 장갑이 널리 쓰였고, 제2차 세계대전 뒤 독일 난민촌에서도 만들어 입었으며, 이주민들이 호주로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생활사의 큰 줄기가 있지만, 전시된 1991년 세트가 실제로 그 난민촌에서 착용된 물건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 차이를 보여주는 독립적인 목소리가 메차르 자신의 회고다. 2015년 PieceWork에 실린 글에서 그는 열세 살 때 독일의 실향민 수용소에서 남은 울·면실로 첫 모자를 떴으며, 1950년 호주로 향하는 여정에서 그 모자를 썼다고 회상한다. 이는 제작자의 기억을 전하는 출처로 읽되, 당시의 첫 모자와 박물관의 1991년 세트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1][5]
박물관의 다른 소장품은 이주의 뒤쪽 시간을 보여준다. 메차르는 호주에 정착한 뒤 1953년 머스티알라(Mustjala), 사레마(Saaremaa) 지역 의상을 만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민속춤 모임에서 입기 위해 가능한 범위에서 지역 복식에 가깝게 제작했다. 그러나 그 의상의 줄무늬 치마와 조끼를 이 글의 편물 모자처럼 부르면 기법이 뒤섞인다. 한 제작자의 물건이라도 뜨개, 봉제, 장식은 따로 읽어야 한다. [6]
자작나무 숄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선택
메차르가 1989~1990년 멜버른에서 만든 삼각 숄 SH 901469에는 자작나무 무늬와 “HAND MADE BY AIME METSAR”라는 라벨이 있다. 박물관은 가늘고 한 겹인 삼각 숄이라고 묘사하지만, 그 카드에서는 숄의 구체적인 편직법을 명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서는 편물의 기술 증거가 아니라 같은 제작자가 이주 뒤에도 에스토니아와 연결되는 소재를 택했다는 비교 자료로 둔다. 모자·장갑의 야르바야니 허리띠 무늬와 숄의 자작나무는 서로 다른 물건에 실린 선택이다. [4]

다음 도안을 펼칠 때 볼 것
메차르의 물건을 실습용 도안으로 보려면 먼저 자료의 층위를 나누는 편이 좋다. 1950년 난민촌에서 뜬 첫 모자는 당사자의 회고, 1953년 복식은 박물관의 다른 소장품, 1989~1990년 자작나무 숄은 기법 미기재 비교 자료, 1991년 모자와 장갑은 손뜨개 실물이다. 실과 색, 모자 테두리, 손가락 끝, 긴 커프스, 지역 무늬의 명칭은 기록과 사진에서 읽을 수 있다. 코수·단수·게이지·배색법은 남아 있는 카드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 재현 작업을 한다면 이 공백을 현대 제작자의 선택으로 분명히 적어 두자. 바로 그 구분이 한 사람의 이주 기억을 장식적인 “민족 무늬”로 뭉개지 않고 읽는 첫걸음이다. [1]–[6]
원문 자료
- [1] Museums Victoria, SH 911634 모자와 장갑.
- [2] Museums Victoria, SH 911634.2 장갑.
- [3] Museums Victoria, SH 911634.3 장갑.
- [4] Museums Victoria, SH 901469 자작나무 숄.
- [5] PieceWork, 2015년 1–2월호, 에스토니아 모자 회고.
- [6] Museums Victoria, SH 911635 1953년 지역 의상.
본문 사진은 모두 각 소장 카드에 CC BY 4.0으로 표기된 Museums Victoria 사진이다. 실제 사진 5장, AI 제작 이미지 0장. 난민촌의 첫 모자 사진과 의상 사진은 권리 확인과 주제 구분을 위해 복제하지 않았다.